1981년 새해를 맞는 조선일보의 자세
다사다난했던 1980년을 마감하고, 조선일보는 1981년 1월 1일 1면 머리에 대통령 전두환의 신년사를 실었다. <국민 총 참여로 새 시대 이룩>이라는 제목 아래 신년사 내용을 소개하고 전두환 일가 사진을 1면 한복판에 대문짝만하게 내보냈다....
다사다난했던 1980년을 마감하고, 조선일보는 1981년 1월 1일 1면 머리에 대통령 전두환의 신년사를 실었다. <국민 총 참여로 새 시대 이룩>이라는 제목 아래 신년사 내용을 소개하고 전두환 일가 사진을 1면 한복판에 대문짝만하게 내보냈다....
1981년 1월 15일 민주정의당이 창당했다. 민정당은 전두환을 초대 총재 및 제12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조선일보는 그 내용을 1월 16일자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1면 머리 기사 <"지탄받는 정치인 안되겠다">는 전두환의 후보수락...
1981년 1월 24일, 전두환은 비상계엄 해제에 관한 대통령 담화를 발표하는 한편 그날 대법원서 확정된 김대중의 형을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바꿨다. 비상계엄은 선포 456일만에 해제되고, 김대중은 죽음을 면했다. 조선일보는 1월 25일자 2면에...
1981년 2월 25일, 대통령 선거인단의 간접선거를 통해 전두환이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조선일보는 2월 26일부터 1면에 <제5공화국>이라는 제목으로 3회에 걸친 기획기사를 싣고, 2면 사설을 통해서도 전두환과 제5공화국에 찬사를...
전두환 정권은 반인륜적 탄압을 행하는 한편 국민의 정치적 비판의식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대중조작의 방법으로 각종 이벤트와 사업을 개발했다. 전두환 정권은 소위 '3S'(섹스, 스포츠, 스크린)로 불리던 퇴폐적 대중문화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했다....
전두환 정권은 민주화운동을 혹독하게 탄압했다. 이른바 '녹화사업'과 대학생들에 대한 감시·연행·고문 등이 끊이지 않았고 반공을 정권안보에 이용하기 위해 간첩단 사건 조작도 자행했다. 그런데도 광주 항쟁 진압 과정에서 드러난 계엄군 만행에 대한...
제5공화국 출범 2주년인 1983년 3월3일을 즈음한 2월 25일, '해금자 명단'이 발표됐다. 정치활동이 금지됐던 250명에 대한 규제를 해제하고 정치활동 재개를 허용한 것이다. 1980년 국보위 정치쇄신위원회가 정치활동을 가로막은 지 2년이...
1984년 7월 29일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이 개막했다. 조선일보는 LA올림픽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개막식 당일인 7월 29일 1면 머리에 <LA올림픽 오늘 개막>이라는 기사를 크게 올리고 거의 모든 면에 올림픽을 다뤘다. 미국...
1985년 1월 18일 신한민주당이 창당대회를 열었다. 신민당은 김영삼의 상도동계와 김대중의 동교동계의 연합체인 민주화추진연합회(민추협)을 모체로 했다. 신민당의 창당은 제12대 총선을 대비한 것이었다. 조선일보는 신민당 창당 다음날인 19일,...
1985년 7월 '학원안정법' 제정이 추진됐다.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7월 26일 1면 머리에 기사를 올렸다. 정부가 갈수록 좌경폭력화하고 있는 학원 소요 사태를 근절, 학원 정상화를 촉진시키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로 '학원안정법'(가칭)을...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 정권과 마찬가지로 무고한 사람을 고문해 자백을 받아냈고, 간첩·용공 사건을 조작해 정국 전환용으로 활용하는 짓을 밥 먹듯 했다. 1980년 6월의 '아람회 사건'과 '무림·학림·부림 사건'(1980~1981년) 등이 그렇다....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과 함께 국내의 용공단체로 조작된 것이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위)’사건이었다. 1985년 10월 29일 서울지검 공안부는 민추위 위원장 문용식(26·서울대 국사학과 3년·휴학), 배후 조종자로 김근태(38·전...
조선일보는 7월 6일 권인숙의 변호인단이 수사관 6명을 고발한 내용 역시 <수사관 6명 고발-추행 사건 변호인단>이라는 제목의 1단 기사로 보도했다. 조선일보 7월 8일자에야 비로소 인천지검이 수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하고 제목을 <성고문 본격...
1986년 10월 28일 오후 건국대 민주광장에서는 전국 29개 대학학생 1천 5백여 명이 모여 ‘전국 반외세·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련)발족식’열었다. 학생들이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학교 주변을 포위한 1천 5백여 명의 경찰이 최루탄을...
건설부장관 이규호가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이 휴전선 북방 금강산 부근에 건설 중인 댐이 한강 하류지역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며 금강산댐 건설계획을 즉각 중지하라고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조선일보는 그 내용을 10월 31일자 1면 머리에...
조선일보가 1986년에 저지른 최대의 오보는 ‘김일성 사망’뉴스였다. 11월 16일자 조선일보 1면에 나온 <김일성 사망설>이 시발점이었다. 조선일보는 휴간일인 11월 17일자로 <김일성 총맞아 피살.이라는 호외를 발간했다. 조선일보는 그것을...
석간 중앙일보는 1월 15일자 사회면에 <경찰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2단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1월 16일자 11면에 그 기사를 4단으로 받았다. 제목은 <조사받던 서울대생 사망>이었다. ‘고문’이란 말이 아예 빠진 조선일보 기사는...
조선일보는 4월 14일자 1면 머리에 <현 헌법으로 정부 이양 대통령선거 연내 실시 개헌문제 올림픽 뒤 생각해야>라는 제목으로 전두환의 ‘4·13 호헌’특별담화를 대서특필했다. 2, 3, 4면에는 해설과 사설 및 정치부 좌담, 그리고 담화 요지를...
전두환에게 건의 형식으로 제안된 6·29선언에서 노태우는 직선제 개헌과 김대중 사면·복권 외에 시국 관련 사범의 석방, 대통령 선거법 개정, 국민기본권 신장, 언론자유 창달, 지방자치제 실시 등 8개항을 제시했다. 조선일보는 6월 30일자 1면에...
조선일보는 11월 4일자 2면 사설<부산 난동 번지지 않게>을 통해 지역감정의 문제점을 재차 거론했다. 이 사설은 먼저 부산 폭력 사태를 ‘부산 난동’으로 규정하고, 부산 사태에 관한 김영삼의 사과를 요구하는가 하면 “이제 김(영삼)총재가 광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