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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칭송하는 조선일보

전두환에게 건의 형식으로 제안된 6·29선언에서 노태우는 직선제 개헌과 김대중 사면·복권 외에 시국 관련 사범의 석방, 대통령 선거법 개정, 국민기본권 신장, 언론자유 창달, 지방자치제 실시 등 8개항을 제시했다. 조선일보는 6월 30일자 1면에 그 소식을 대서특필하고 2면에 <위대한 나라로의 전진을 위해 / 대전환의 계기가 된 노 대표의 극적 선언>이라는 통단사설을 내보냈다. 그것은 그야말로 조선일보가 보인 ‘변신의 극치’였다.

조선일보<위대한 나라로의 전진을 대전환의 계기된 노대표의 극적 선언>(1987.6.30 )
7년 가뭄에 소나기가 퍼부은 듯한 시원하고 후련함이 29일 아침 온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예고 없이 발표된 민정당의 노태우 대표위원의 시국 수습을 위한 특별선언은 마치 핵폭탄과 같은 위력이었고 상상을 넘어선 놀라움이었으며, 이 난국을 수습하는 명쾌한 해답을 담은 바르고 옳은 단안이었음이 분명한 것 같다.

노태우는 6·29 선언을 발표하면서 그것이 청와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대통령후보는 물론 당 대표직을 포함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민정당은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노태우 구상을 당의 공식 입장으로 추인했고, 전두환은 7월 1일 특별담화를 통해 6·29선언을 대폭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조선일보 6월 30일자부터 <6·29선언 이후>라는 제목으로 5회에 걸쳐 시리즈를 내보냈다. 첫 회에는 노태우의 결단에 대한 칭송 등 헌사로 가득한 내용을 담았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일보<6.29. 이후>(1987.6.30)
그가 자신의 구상 발표 직후 동작동 국립묘지를 거쳐 아산 현충사를 찾은 것도 이 같은 마음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는 늘 나라의 위기에 몸을 던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가장 존경한다는 말을 되뇌어왔고, 특히 장군의 ‘필사즉생 필생즉사’라는 신조를 좌우명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6·29선언은 과연 조선일보의 보도처럼 노태우의 ‘고뇌에 찬 결단’이었을까. 여기 관해서는 수많은 주장과 증언들이 나왔다. 이것들을 종합해보면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온다. 6·10항쟁에 대한 대응책으로 전두환은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세웠으나 그에 따른 부담과 미국의 반대 등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만든 전두환의 또 다른 각본이 6·29선언인 셈이었다. 전두환은 각본에 따라 노태우의 6·29선언을 수용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고, 조선일보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태우 띄우기’에 나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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