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 상해 전투에 대한 '경마 중계식'보도
1937년 7월 30일자 동아일보 1면은 <천진서도 격전 전개!>라는 큼직한 컷 아래 일본군이 베이징 부근의 항구도시 텐진을 맹렬히 공격한 데 관한 기사들로 뒤덮였다. 제목들만 보아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동참 총참 간서 양군 충돌 /...
1937년 7월 30일자 동아일보 1면은 <천진서도 격전 전개!>라는 큼직한 컷 아래 일본군이 베이징 부근의 항구도시 텐진을 맹렬히 공격한 데 관한 기사들로 뒤덮였다. 제목들만 보아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동참 총참 간서 양군 충돌 /...
일본군의 중국 침략이 한창이던 1937년 9월10일자 동아일보 1면에 오른 사설의 제목은 <생도 연합연습의 의의>였다. 때는 비상시국이라 전 국민이 전투력의 1단위로서 육심협력하여 시국 수습에 거국일치의 우리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아니 될...
동앙일보 1937년 11월 2일자 3면에는 <남총독 금강산 답파기 / 비로봉산에선 원기와 기백>라는 장문의 기사가 실렸다. 한풍이 심한 때의 금강산 탐승은 남(미나미)총독에게 상응한 금회의 여행이었다(중략)누가 60여 세의 노구라고 생각하리오....
상해와 남경을 점령한 뒤 침략전쟁을 화북지방으로 확대하고 있던 일제는 조선인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지우는 예비적 조치인 육군지원병 제도를 실시하는 한편 ‘국체명징’이라는 미명 아래 조선인들을 ‘황국신민화’하는 정책을 강행했다. 1938년 4월...
1938년 4월 26일자 동아일보 사설은 총독부 대변지처럼 ‘성전의 승리’를 위해 조선인들이 ‘총후보국’에 열성을 다하라고 채찍질을 하고 있다. 지나사변 이래 제1선의 병은 신명을 아끼지 않고 용감하게 싸워왔으며 총후의 국민은 만난을 배하고...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까지 가세해서 “조선의 청년들이여, 지원병에 응모하라”고 선동했기 때문인지, 일본군인이 되면 하루 세 끼는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젊은이들이 많았기 때문인지, 전국 방방고곡에서 3천여 명이 입대하겠다고...
1938년 7월 7일은 일제가 중국침략전쟁(일본의 용어로는 지나사변)을 일으킨 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동아일보는 7월 8일자 1면 머리에 일본 외상 우원의 ‘담화’를 크게 실었다. 회고하면 지나사변은 벌써 1주년을 영하게 되었는데 노구교에...
1939년에 접어들자 일제는 국민생활 전반을 통제하는 ‘전시체제’를 더 강화하기 시작했다. 동아일보 1월 1일자 1면 머리에 실린 ‘천황’의 새해 동정에 그런 경향이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 1938년 1월 1일자에도 그랬듯이 동아일보는 ‘천황’과...
1938년 9월 24일 총독부는 조선연합청년단 발단식을 열었다. 동아일보는 관련 기사를 25일자 3면 머리에 실었다. 젊은 혈조와 끓는 청년조선의 의기를 표증하여 전 조선 15만 단 원인중견 청년이 엄연한 단결의 기초를 쌓아 올릴 날은...
1939년 5월 들어 부읍의원과 면협의원 선거를 실시하게 되자 총독부는 언론을 조선인들에게도 지방자치를 허용하는 듯이 선전하기 시작했다. 주권도 없는 식민지에서 조선사람들이 지방자치를 주체적으로 해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일본군은 6월 14일, ‘항일테러범’을 인도하지 않는다는 구실로 중국 천진의 영국·프랑스 조계를 무력으로 봉쇄했다. 그러자 일본과 조선에서는 “영국을 응징하자”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런 분위기 속에 6월 15일 ‘배영국민대회’가 서울에서...
1939년 7월 8일자 동아일보에는 ‘지나사변’에 지원병으로 나가서 싸우다 처음으로 전사한 이인석에 대한 기사<지원병 최초의 전사 / 조선 지원병의 영예>가 크게 실렸다. 제국 군으로서 최고의 영예를 걸머지고 조선 최초의 육군 지원병, 충북...
동아일보 1939년 9월 1일자 2면에는 <내일은 애국인 경성의 각종 행사>라는 제목의 예고기사가 나왔다. 명 9월 1일은 애국일 실시의 첫 출발일 뿐 아니라 진재 17회 기념일에도 해당하므로 경성부에서는 국위선양, 황군 무운장구를 기원하고자...
1939년 11월 6일자 동아일보 1면에는 희한한 ‘사고’가 나타났다. 제목은 <새해의 선물 / 최신 세계대지도 / 신춘 원단 신년호 부록 / 월정 독자에게 무료 배부>이다. 바야흐로 세계는 동으로 서로 새로운 시대를 산출하기 위하여 거대한...
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가 목숨을 부지하는 마지막 해인 1940년이 되었다. 동아일보 1면 머리는 지난해보다 훨씬 더 ‘화려한’‘천황의 새해 동정’으로 장식되었다. 건국의 항전이 더욱 빛나게 유구의 보조는 번영에 번영, 황공하옵시게도 천황...
1940년 2월 11, 12일자 동아일보 1면과 2면은 일본의 건국기념일인 기원절에 대한 기사와 사설로 도배되었다. 2월 11일자 동아일보 사설<봉축 2600년 기원절>은 제 나라의 건국기념일은 개천절을 까맣게 잊은 채 침략자의 ‘명령’에 최대의...
1940년 3월 10일은 일본의 제35회‘육군기념일’이었다. 동아일보는 지난해보다 훨씬 더 화려하게 그날을 기념하는 지면을 꾸렸다. 3월 11일자 2면은 큼지막한 기념식 행사 사진들과 함께 요란한 내용의 기사들로 가득 찼다. 머리기사는 아래와...
1940년 3월 14일자 동아일보 1면에는 일제가 장개석 정부 대신 중국에 세우려고 하는 왕정위 중심의 지난 신중앙정부를 최대한 높이 평가하는 ‘제국정부 수상 담화’에 관한 기사가 나왔다. [동경 전화 동맹] 근근 탄생될 왕정위 씨 중심의 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