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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 상해 전투에 대한 '경마 중계식'보도

1937년 7월 30일자 동아일보 1면은 <천진서도 격전 전개!>라는 큼직한 컷 아래 일본군이 베이징 부근의 항구도시 텐진을 맹렬히 공격한 데 관한 기사들로 뒤덮였다. 제목들만 보아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동아일보<천진서도 격전 전개!>(1937.7.30)
  • <동참 총참 간서 양군 충돌 / 시가전 전개 완연 사항화! / 영불 조계서도 특별경계>

  • <지나주둔군 발표 / 주둔군 중대 결의 / 정예기 시가 상공을 저공 비행>

  • <해군부대도 육군과 협력 / 태고시 공격을 드디어 개시!>

  • <지나군 총붕괴 / 피방 사상자 다수>

  • <공군으로 단호 소탕>


일본군은 8월13일 중국 동남부의 대도시인 상해에서 지나군(장개석의 국부군)과 대접전을 시작했다. 동아일보 8월 15일자 1면 머리에는 ‘아군(일본군)’이 상해를 초토화하듯이 맹공격을 가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상해 시내 각처 격전 전개 양군 최초의 공중전 군함 000 포격 개시>가 올랐다.

동아일보<상해시내 각처 격전 전개 양군 최초의 공중전 전개>(1937.8.15 )
[상해 14일 발 동맹 지급보] 지나공군의 폭탄 투하의 보에 0000에서 대기중이던 아공군은 즉시 이를 격멸하려고 출동 준비에 착수하였다. 북지사변이래 최초의 공중전이 전개되어 있다. 황포 강산 아군함 000은 오전 9시 강만의 시정부 구내에 거하여 아군부 방적공장지대를 공격 중인 지나군에 대하여 맹연 포격을 개시하였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조선의 언론계에 일본군의 전황을 독점적으로 전달하던 ‘동맹통신’은 일제의 대외선전매체였다. 그래서 조선의 독자들은 그 통신이 보내는 기사를 글자 하나 빠짐없이 믿어야 했고, 그 충실한 ‘확성기’가 주요 신문들이었다.


상해를 침략한 일본군이 고전을 거듭하고 있던 1937년 9월 7일 동아일보는 <애국일>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황군의 노고’를 치하하고 ‘전조선적인 애국’을 부르짖었다.

동아일보<애국일>(1937.9.7 )
(생략)시국이 갈수록 중대화하고 있음을 재인식 할 때에 열성에 열성을 가하여 이 난국의 하루라도 빠른 극복을 염원하지 않으면 아니될지니 이에 애국일을 당하여 전 조선적으로 팽배하는 애국의 지정을 축복하는 동시에 다시금 시국 재인식의 기회를 삼아 경일층 격앙발분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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