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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의 새해 동정을 알리는 동아일보

조선총독부는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조선어 신문사들에 일왕의 새해 동정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보냈던 것 같다. 1931년 1월 2일자 동아일보에는 1면에는 아래와 같은 기사가 실렸다.

동아일보<양 폐하 어영년>(1931.1.2)
천황폐하께서옵서는 오전 4시 반 기상하옵시어 현소신가전남정에서 신지산릉을 요배하옵시고 인해 현소삼전에서 세단제에 어친배하옵시고 봉황간에 고의 어선에 임하옵시고 필하옵신 후 어내의에서 황후 폐하, 조궁효궁 양 전하와 함께 도소의 축선을 잡수시고 오전 10시부터 정전에 출어하옵시와 황족 전하 이하 내외 사신의 배하를 받으신다.

이 기사의 문장은 완전한 일본식 조한혼용이기 때문에 당시의 조선 인민들은 읽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왕실은 권위를 세우기 위하여 이렇게 난해한 ‘보도 자료’를 언론에 보낸 것 같다. 이른바 ‘천황’은 반신반인이니 표현도 한단계 격을 높여 어렵게 했던 모양이다. 이런 기사는 친일파를 비롯한 식자층이나 이해했을 것이다.



1월 31일에는 <신춘 현상모집의 표어 기타>로 사설을 실었다.

동아일보<신춘 현상모집의 표어 기타>(1931.1.31)
본 지의 신춘 현상모집인 조선의 노래, 생활 혁신, 식자 운동의 3종 표어와 및 남녀청년 좌우며 등은 원래 응모 원고가 수만 통의 다수에 달하여 6~7인이 분담 심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전에 겨우 완료하였다. 우리는 응모자 제위가 본지의 미의를 열성 찬동하심에 사의를 표하고 아울러 본지의 이 계획이 동포에게 이들 제 문제에 대한 사고의 자격과 기회를 제공한 것을 자긍하는 바다.

해외에서는 목숨을 걸고 독립투쟁을 하고 있는 사이, 국내의 언론은 평화스럽게 ‘신춘현상모집’을 하면서 개인의 개조운동을 펼쳤다는 것은 식민종주국 일본에 대한 민중의 역동적 순을 주도한 처사로 평가함이 당연하다.


2월4일자에는 <조선 청년의 좌우명- 현상 당선자 발표>라는 사설이 실렸다.

동아일보<조선청년의 좌우명>(1931.2.5)
본사가 신촌 현상으로서 모집한 <조선의 노래>, 생활혁신, 식자운동, 보건운동 3 표어는 이미 본지에 그 전문을 게재 및 논평하였거니와 금번 다시 청년 남녀의 좌우명을 발표함에 있어서 또한 감명이 없지 않다.

동아일보는 당시 정치문제 관한 사설을 쓰면 검열에 걸려 글이 삭제되거나 신문이 압수당하는 일이 빈번한 상황이었다고 변명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현상모집 당선작의 글에 대하여 “감명이 없지 않다”라는 찬사를 쓴 것은 독자를 속이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시로 ‘민족의 표현기관임을 자임함’을 강조하는 동아일보가 신춘현상모집 당석작의 평범한 글들이 민족의 장점을 표현한 듯이 허위 과대 포장한 것은 비난받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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