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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의 의거' 왜곡보도

동아일보는 1932년 5월 1일자부터 ‘난데없는’ 기사들을 잇달아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 날짜에는 1면에 <수류탄 사건의 파동>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동아일보<수류탄 사건의 파동>(1932.5.1)
[상해 연합] 일·중 정전교섭은 일본 대표자 재위와 또 범인 배후의 정치적 색채 판명까지는 일본 태도를 결정할 수 없는 사정이 있어 무기연기로 그 뜻을 관계각국에 통고하였다.

같은 날자 2면 머리에는 <미, 노, 조선 중국 등 각국 인사 10수 명 취조>라는 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미, 노, 조선, 중국 등 각국 인사 10수 명 취조>(1932.5.1)
[상해 29일 발 연합] 당일 신공원 축하신장의 경계는 헌병대장 적근 중좌이하 간뢰 제1분대장, 중촌 치중병 소좌 등인데 적근 중좌는 “책임은 전혀 자기에게 있어 깊이 결정한 바 있다”고 묵묵히 일체를 말하지 않았다.

이 기사는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일어나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다룬 것이다. 제 1보라서 그런지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 백천 대장은 중상이 아니라고 보도되었으나 그는 현장에서 즉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당일에 윤봉길 의사가 의거의 주인공이란 사실을 일부러 알리려 하지 않은 것인지 윤 의사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있다. 윤 의사는 도시락 모양의 폭탄을 던진 다음 태극기를 꺼내 “대한 독립 만세”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따라서 윤 의사의 폭탄 투척 행위는 처음부터 테러가 아닌 의거임이 분명하고 신원도 즉석에서 밝혀졌을 터인데도 공개되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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