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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과 해방을 부정한 사설 '민족적 경륜'

동아일보는 1924년 1월 2일부터 6일자까지 5회에 걸쳐 <민족적 경륜>이라는 제목의 연속사설을 1면 머리에 실었다. 이 사설은 나라 안팎의 독립운동가들은 물론이고 언론계, 그리고 나아가서 전 조선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동아일보가 “우리는 조선 내에서 허하는 범위 내에서 일대 정치적 결차를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일제의 강점과 수탈에서 벗어나려고 싸우는 독립운동가들이나 만주와 시베리아 등지에서 무장할일투쟁을 펼치던 전사들의 노선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 연속사설은 한국 현대언론사에서 악명 높은 반민족적 문필행위 가운데 아주 두드러지는 것이다.

동아일보<민족 백년대계의 요>(1924.1.2)
우리는 단결의 필요를 수십년 내로 논하였고 또 단결하자는 의사도 그만큼 역설하여 왔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까지도 추상적 이론이었었고 실행 즉 구체화의 시기에 달하지 못하였었다. 이 모양으로 가는 동안에 우리의 민심은 날로 환산하고 우리의 민력은 날로 쇠미하여 갔다. 우리는 이러고 있을 수 없는 절박한 시기를 당하였다.

다음날에도 <정치적 결사와 운동>이라는 부제로 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정치적 결사와 운동>(1924.1.3)
지금까지에 하여온 정치적 운동은 전혀 일본을 적국시하는 운동뿐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종류의 정치운동은 해외에서는 만일 국내에서 한다면 비밀결사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무슨 방법으로나 조선 내에서 전 민족적인 정치운동을 하도록 신생면을 타개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조선 내에서 허하는 범위 내에서 일대 정치적 결사를 조직하여야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동아일보는 “자유 사상이 보급될수록 정치는 민중화하여 농민이나 노동자까지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게 된다”고 전제한 뒤 “조선 민족은 지금 정치적 생활이 없다”고 단정한다. 조선인이 “독립운동조차도 원치 아니하는 강렬한 절개 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연속사설이 나오기 3년 전에 터진 3·1 독립투쟁은 독립운동이 아니고, 1920년 중국 상해에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을 원하는 정치결사가 아니었다는 뜻인건지 의문이 든다.


1월4일 <산업적 결사와 운동>이라는 부제로 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산업적 결사와 운동>(1924.1.4)
산업적 결사와 작일 본란에 말한 정치적 결사와는 비록 그 공업의 성질이 다르다 하더라도 또한 그 사업을 행할 자는 지도자 측으로 보거나 일반 민중으로 보거나 동일한 자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운동에 선후완급이 있을 것이 아니요 동시에 함으로 서로 기세로 보익할 것이다.

연속사설 <민족적 경륜>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허황한 주장과 공상적 관념에 사로잡힌 ‘책상물림’의 탁상공론으로 ‘치장’되어 있다. ‘산업적 대단결의 힘’으로 조선의 산업을 일으키자고 외치는데, 일제의 하부구조에 편입된 조선의 ‘매판자본가들’을 어떻게 ‘산업적 대단결’로 끌어들일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이나 날품팔이로 연명하는 노동자들을 모아 ‘산업적 대단결’로 이루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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