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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유신 찬양한 조선일보

박정희는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으로 여론의 눈을 돌리고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폭압적 방식을 동원했다. 바로 10월 유신이다. 1972년 10월 17일 서울 시내에 군 병력이 배치됐고 광화문 부근에는 탱크까지 나왔다.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박정희는 특별선언을 발표해 국회를 강제 해산했다. 명백한 헌정 쿠데타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일보는 박정희 정권의 입장을 받아쓰거나 적극 지지하는 기사만 연달아 게재했다.


조선일보 사설 <비상계엄과 경제의 방향>(1972.10.21.)

조선일보 사설 <계엄 하의 치안질서>(1972.10.22.)

특히 10월 28일자 2면 사설 <유신적 개혁의 시초, 민주주의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헌법>는 유신헌법안에 찬사를 보냈다.


조선일보 사설 <유신적 개혁의 시초,>(1972.10.28.)
이번 개헌안의 특징은 뭐니뭐니 해도 첫째 조국의 평화통일을 달성하려는 강력한 의지와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헌법장치를 마련하고 둘째로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여 국력과 국가기능을 능률적으로 강화함과 동시에 미숙한 정당정치적 낭비를 극소화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의 안정과 번영을 공고하게 하려는 지향...(중략)...이번 개헌안처럼 발의 측의 문제의식이 이렇듯 왕성하고 과감한 개혁이 담긴 개헌안을 우리는 일찍이 본적이 없다...(중략)...이번 개헌안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우리 헌정사에 일대 전기를 예견케 하고 있다.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국회와 사법부를 제멋대로 붕괴시켜 대통령의 시녀로 만든 개헌안을 조선일보는 입이 마르도록 찬양하고 있다. 박정희의 영구 독재시도에 아부와 찬사로 일관한 조선일보의 당시 태도가 잘 드러난다.

이후 11월 21일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됐고 계엄령 하에 치러진 국민투표는 국민들의 입과 귀를 막고 진행된 무의미한 형식에 불과했다. 12월 23일, 유신헌법에 따라 그 유명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통령선거가 실시됐고 단일 후보 박정희가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민주주의와 헌정을 무너뜨린 '박정희식 선거'였다. 이에 조선일보는 12월 28일자 사설을 통해 '유신대통령 박정희 찬가'를 불렀다.


조선일보 사설 <새 역사의 전개>(1972.12.28.)
우리는 국민적 입장에서 박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천년 묵은 가난의 박토 위에 부와 근대화의 씨앗을 뿌려 가꿈으로써 이 나라 국민의 뼈에 젖은 패배의식과 열등감을 용기와 자신감으로 대체해주고 지난 4반세기에 걸쳐 지속되어온 냉전 속에서의 동족상잔과 남북결원의 민족사에 10.17구국영단으로 종지부를 찍고 평화통일의 새 역사를 위하여 정초한 박정희 대통령을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 취임토록하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미덥고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중략)...거시적으로 보아 대과가 없고 오늘 우리가 보는 그의 견실한 업적을 긍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상, 박 대통령의 영도력은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할 줄 안다...(중략)...10월 유신이란 여러 말할 필요도 없이 온통 한 나라의 역사를 개조하는 거창한 과업이다.

북한이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찬양할 때나 볼 수 있는 온갖 미사여구가 동원됐다. 양극단은 닮기 마련이라고 박정희 정권과 북한 일당독재가 닮은 것만큼, 그 체제의 언론 역시 쏙 빼닮았다. 정부 기관지나 민주공화당보라고 봐도 손색이 없는, 용비어천가에 지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조선일보가 천황 폐하와 대일본제국에 바치던 찬사와도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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