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당선을 '정당화'하고 '축하'한 조선일보

전두환은 1980년 8월 25일 대통령후보로 등록한 뒤 27일 단일후보로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날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재적 2525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2524표, 무효1표로 전두환을 선출했다.


선거 이전부터 조선일보는 집요하게 군의 집권을 정당화했다. 8월 24일자 조선일보 사설 <길 / 새로운 길잡이가 나타나는 데 붙여>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일보 사설 <길> (1980.8.24.)
그러나 성급히 학원을 뛰쳐나와 수도의 도심지까지 혼란의 도가니로 만든 대학생들에 의한 데몬스트레이션과 수백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야 끝난 광주 사태는 순리에 의하여 정치발전을 이룩하리라는 국민적인 약속을 무참히 짓밟고 말았으며 그런 과정 속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화해를 거부하는 적대감과 용서 없는 처단을 주장하는 순환이론의 노정이었다. (중략) 어떠한 국민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군인만은 절대적인 중립을 지키고 오로지 군사적인 임무에만 전념하여야 한다고 생각한 데는 분명히 인식의 맹점이 있다. 대한민국의 군대는 단순한 용병집단인 외국의 외인부대가 아닌 것이다.

이 사설은 대학생 시위와 광주항쟁을 "순리에 의하여 정치발전을 이룩하리라는 국민적인 약속을 무참히 짓밟"았다며 비난했다. 또한 "군인만은 절대적인 중립을 지키고 오로지 군사적인 임무에만 전념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인식의 맹점이라고 설명하며 사정에 따라 군의 정치개입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8월 27일 나타날 지도자를 지켜보아야 한다'는 견강부회의 주장을 펼치기 위함이다.


전두환 당선 이후의 기사들도 역시 찬양 일색이다. 8월 28일자 1면 <전두환 대통령 집무 시작>을 앞세우고 2, 3, 7면에 사설과 관련기사들을 내보냈다. 사설 <새 시대의 개막>의 내용은 이렇다.

조선일보 사설 <새 시대의 개막>(1980.8.28.)
생각하면 작년 '10·26 사태' 이후 국가안보와 사회안전이 적지 않게 우려되었으나, 여러 고비의 난국을 넘기면서 오늘에 이르러 점차 정상을 되찾게 되었다. 이 어려운 과도기에 전 장군을 중심으로 한 군부가 현실정치의 배후에서 국방과 사회질서 유지에 관건적 역할을 해온 것은 다 아는 바다. (중략) 전 대통령의 취임으로 바야흐로 새 시대 새 역사는 개막되고 있으며 많은 국민들은 전 대통령 정부에 새로운 소망과 기대를 걸고 나라의 장래와 자신들의 생활을 전망하고 있다. (중략) 이에 우리는 전 대통령의 탁월한 경륜과 실천력을 거듭 기대하는 동시에 국민들의 민족적·사회적 자각을 이 기회에 거듭 촉구하는 바이다.

전두환은 9월 1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1979년 말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지 160여일 만이다. 전두환은 9월 29일 제5공화국의 헌법개정안을 공고했다. 대통령 간선제와 대통령의 7년 단임제를 핵심으로 한 이 개정안은 10월 22일 국민투표로 확정됐다. 전두환은 10월 27일 개정헌법에 따라 국회를 해산하고 국가보위입법회의가 그 기능을 대신하도록 한 뒤 의원 81명을 모두 자신이 임명했다. 조선일보 사주 방우영, 간부 출신 송지영·김윤환·남재희 등이 입법회의 의원으로 활동했다. 조선일보와 신군부의 관계를 암시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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