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반란으로 정권 초기부터 여론이 좋지 않았던 박정희 정권은 굴욕적 한일회담으로 언론인들로부터 숱한 비판에 직면했다. 박정희는 언론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털어놓았으며 결국 1964년 7월 30일, 공화당으로 하여금 '언론윤리위원회법'이라는 희대의 '언론 탄압 및 통제 방안'을 단독 상정하도록 했다. 이 법은 '자율적 규제'라는 미명 하에 언론 만을 따로 규제하는 '국가보안법', '반공법'이나 다름 없었다. 야당의 묵인 하에 국회에서 이 법은 가결됐다.
이에 조선일보는 8월 4일 <민주정치에 큰 오점을 찍었다>와 같은 비판 사설을 내며 언론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 전체 언론의 반발이 거세지자 박정희 정권은 법안에 반대한 신문사들의 정부기관 구독을 끊어버렸다. 일종의 보복조치였다. 이에 일부 언론사들이 투쟁 대열에서 이탈했고 조선일보는 그 언론사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사회적 저항이 더욱 거세지자 박정희는 작전을 바꿨다. 9월 8일 충남 유성에서 언론계 대표들과 만난 박정희는 '법 시행의 무기한 보류'를 선언했다. 그러자 그 전까지 박정희와 대립하던 조선일보는 돌연 '박정희의 위대한 결단'이라며 찬양하고 나섰다.
이번 박 대통령의 조치는 참으로 영단이 아닐 수 없으며 비록 그동안 언론의 자세에 대한 견해차와 착잡한 정정에서 비롯된 입법 과정...(중략)...근본적 수습을 단행한 정치적 판단과 용기를 우리는 높이 찬양해 마지않는다. 물론 시행 보류가 법 철폐와는 다르겠지만...(중략)...사실상의 철폐와 조금도 다름이 없을 것으로 해석...
국회와 여당을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며 초유의 언론 탄압 법안을 통과시키고 이에 국내외적 여론이 상당히 나빠지자 못 이긴 듯 '법 시행 보류'를 선언한 박정희에게 조선일보는 최고의 찬사를 보낸 것이다. 이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박정희 정권과의 투쟁에 앞장서 승리한 것처럼 자화자찬하기도 했는데 '승리'한 투쟁 주체가 독재자에게 '영단', '찬양'과 같은 표현을 쓸 수는 없다. 조선일보의 기회주의적 면모가 잘 드러난 사례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