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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파업 사태를 '노·노 갈등'보도

1988년 12월 12일 현대중공업 노조가 총파업에 들어갔다. 동아일보는 그 날짜 15면 3단 기사로 그 소식을 전했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하면 의외로 작은 보도 비중이었다. 이후 동아일보 지면에는 현중 파업 사태에 관한 보도가 거의 보이지 않다가 해가 바뀐 1월 9일자 사회면 머리에 <현대 노조원 습격 20여명 부상 새벽 2곳서 구사대 자처 100여명이 무차별 폭행>라는 제목의 기사가 등장했다.

동아일보<현대 노조원 습격 20여명 부상>(1989.1.9 )

회사가 파업 노동자들에게 테러를 가한 것이 분명한데도 동아일보는 14면에 실은 해설기사의 제목을 <회사 조종인가…노·노 갈등인가>라고 달아 마치 그 사건에 노·노 갈등의 가능성도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사전 모의를 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는 점, 무엇보다도 재미동포인 제임스 리라는 배후 인물을 검거했다는 사실을 자세히 보도하면서도 일 노조 대의원들이 테러에 가담했다는 것만을 두고 ‘노·노 갈등’으로 몰아가는 것은 사측이 일상적으로 애용하는 프레임이다.

동아일보<회사 조종인가 노노 갈등인가>(1989.1.9 )

12월 13일자 동아일보 사설<노사폭력과 공권력>도 냉큼 그런 프레임을 차용한 것이다.

동아일보<노사폭력과 공권력>(1989.1.10)
폭력과 탈법은 자제되고 지양되어야한다. 기사년 벽두에 울산에서 자행된 한바탕의 폭력 사태는 현대라는 기업의 사주와 조종에 의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노노간 갈등의 표출이었는지는 당국의 수사가 밝힐 것이다. 그러나 분별있는 대다수 국민의 관심은 그와 같은 폭력을 찾아 올리는 의식과 관행의 깊은 뿌리를 도려내는 일에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현중 테러가 회사 측에 의해 벌어진 것인지 노·노 갈등 때문에 벌어진 것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아무튼 폭력은 나쁜 것이니 서로 자제하지 않으면 공권력이 개입할 것이라는 경고인 셈이다. 테러의 주범이 회사 측이거나 일부 어용 노조원이 가담한 구사대이거나 간에 어쨌든 피해자는 파업 중인 노조가 분명한데도, 사측을 인정하지 않고 폭력을 쓴다면 공권력이 동원될 것이라고 노조를 겁박하는 기괴한 논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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