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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도'로 보도된 광주 시민

5월 23일부터 조선일보는 광주에서 임시취재반의 이름으로 기사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 날짜 1면 머리기사의 제목은 <광주사태 수습 기미>이다. 그러나 내용은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하면서 '난동'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5월 18일자 부터 22일자까지 사회면(7면)에 실린 기사들은 날짜별로 상황을 보도했으나 광주시민들의 저항을 '폭동'으로 전하고, 진압군의 잔악행위는 '유언비어'로 소개했다.

조선일보<광주 사태 수습 기미>(1980.5.23)
22일 현재 군과 경찰이 전남도청에서 철수한 뒤 광주시는 일부 무장한 폭도에 의해 장악되어 행정은 완전히 마비됐다.(중략)폭도들은 경찰서와 예비군 무기고에서 총기와 탄약을 탈취, 무장하고 광주시청, 전남도청 등 주요 공공건물을 차례로 점거하는 한편.

조선일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같은 날짜 2면 사설<내각에의 절실한 기대>은 새로 들어선 박충훈 내각에 '광주사태'의 문제 해결을 기대한다며 "국민적 협조로 이 난국을 타개하자"고 호소하고 있다.

조선일보<내각에의 절실한 기대>(1980.5.23)
일부 군중들은 각처의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장화한 채 대치 중이라 하니 지난달 사북 사태 이상의 심각하고 우려할 사태가 국토의 일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진압군의 잔학행위에 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없이 광주 항쟁을 사북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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