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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김대중 납치 사건' 축소보도한 조선일보

1973년 8월, 한국 정치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항상 꼽히는 '김대중 납치 사건'이 벌어졌다. 후일 20년도 더 지나서야 밝혀진 사건의 진상은 박정희가 지시해서 벌어진 중앙정보부 공작원들의 살해 미수 및 납치였다. 사건 당시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제1야당 신민당 후보로 나서서 박정희에 맞서 민주정부 수립을 강하게 주장하고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유명 정치지도자였다. 그런 인물이 실종됐고 여러 의혹이 일었으나 조선일보는 피상적인 사실만 전한 짧은 기사로 다뤘다. 첫 보도인 1973년 8월 9일자 보도 역시 2단짜리에 불과했다.


조선일보 <김대중 씨 실종>(1973.8.9.)


당시 많은 국민의 신임을 받고 있던 김대중이 한국도 아닌 일본에서 벌건 대낮에 사라졌다는 뉴스를 이렇게 2단짜리 기사로 전한 것이다. 일본 정부를 대변해 관방차관이 따로 사건 경과를 발표할 정도로 일본에서도 큰 논란이 됐으나 조선일보는 관방장관의 발표만 짧게 받아썼다. 박정희의 최대 정적이 실종됐으니 당연히 언론이라면 더 파고들어 자세한 기사를 내야 했지만 조선일보는 그렇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김대중이 살아서 한국의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단지 정부의 발표나 목격자들의 말 일부를 인용하는 피상적 보도만 반복했을 뿐이다.







조선일보 <김대중 씨 신변보호 요청>(1973.8.10.)
조선일보 <장기수사 될 듯>(1973.8.12.)
















이러한 기사들의 공통된 특징은 제목의 활자가 아주 작고 내용을 좁은 지면에 빡빡하게 채워 독자 눈에 잘 뜨이지 않도록 했다는 점이다.


그러던 8월 14일, 그간의 기사보다는 조금 더 큰 기사가 조선일보에 실렸다. 그 제목은 <김대중 씨 자택 귀환>이었다. 그러나 이 기사도 가로길이가 8cm에도 못 미쳤다.


조선일보 <김대중 씨 자택 귀환>(1973.8.14.)

그러나 이 기사 '납치 뒤 강제 귀가'를 '자택 귀환'으로 전한 반쪽 짜리 보도였다. 이후에도 조선일보는 김대중 납치 관련 기사를 정치면이 아닌 사회면에 실었고 피상적 보도로 일관했다.


조선일보는 9월 7일, 일본에서 한국의 정보기관이 일본에서 김대중 납치를 주도했다는 의혹이 공공연히 퍼지고 일본 정부가 박정희 정권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자 그에 동조하는 사설을 냈다.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불만스러울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해서 조선일보가 바람직한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니다. 줄곧 소극적인 보도를 하다가 일본 쪽 동향이 심상치 않자 오히려 일본의 눈치를 본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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