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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도 이승만을 극존칭으로 다루는 동아일보

10월 25일 국군 제6사단 7연대가 압록강변의 초산을 점령했다. 그러자 대통령 이승만은 10월 29일 오전 8시 35분 미군 특별비행기를 타고 평양으로 날아갔다. 그는 평양시청 앞에 모인 군중 10만여 명의 환영을 받으면서 ‘민주 쟁취를 맹서하자’라는 요지의 ‘유시’를 했다.


동아일보는 10월 31일자 2면 머리에 <39년 만에 입북 / 천지를 뒤흔드는 시민의 환호성 / 대통령 평양 환영대회 임석>이라는 기사를 크게 실었다.

동아일보< 39년 만에 입북>(1950.10.31)
이 대통령 각하께서는 10월 29일 상오 7시 40분 경무대 관저를 출발하시어 신 국방부장관, 이 공보처차장, 김 공군참모장, 김 비서관, 이 정훈국장, 김 한청단장 등을 대동하시고 동 시 35분 여의도공항을 떠나 일로 평양을 향하시어 동 9시30분 정 참모장을 비롯한 군부 요로의 환영리에 평양 능라도비행장에 안착하시었다(생략)

이 기사는 대통령 이승만에 대해 ‘각하’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동아일보가 주로 사용한 말은 ‘이승만 박사’또는 ‘이 대통령’이었다. 아무리 전시이고 ‘평양탈환’에 흥분한 상태라고는 하지만 기사의 주어에 ‘각하’를 붙인 것은 동아일보가 1930년대 후반에 일본 왕을 ‘천황 폐하’라고 극존칭으로 섬기던 것을 연상시킨다.


이 기사를 보면, 한국전쟁이 터지자 수도 서울과 시민들을 버리고 재빨리 남쪽으로 피신해서 ‘거짓방송’을 통해 많은 국민이 피란에 나서지 못하게 한 대통령 이승만, 예고도 없이 한강다리를 폭파해서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정부의 최고책임자는 사라지고 금세라도 남북통일을 이룰 듯이 기세가 등등한 ‘개선장군’의 모습만이 두드러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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