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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탁의 최일선에 나선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1946년 1월 1일자 1면에 실은 <신정일언>을 통해 ‘반탁’은 무조건 옳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신정일언>(1946.1.1)
타력의 환멸을 만끽한 우리는 자력의 고귀를 더욱 더 통감하였거니와 신정 벽두에 맹서할 3천만의 일관한 신호는 오직 “자력으로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이라는 정신에 잇다. 그리고 “외모의 극복은 내부의 단결”이라는 노력에 있다. 이정신과 이 노력으로써 ‘각 길로 한 신지, 완전한 자주독립“이라는 피안을 향하여 맹진할 뿐이겠다.

1946년 1월 초 조선공산당 당수 박헌영이 평양을 방문한 뒤 1월 4일 좌익진영이 ‘박탁’에서 ‘찬탁’으로 방향을 바꾸자 동아일보는 1월 5일자 사설<자아 모독을 격함 / 신탁 수락은 노예근성>을 통해 찬탁을 격렬하게 공격했다.

동아일보<자아 모독을 격함>(1946.1.5)
탁치 반대는 3천만의 총의이다(중략) 조선문에 대한 모스크바 3상회의가 탁치라는 결론이었다는 것은 그 내용 여하를 막론하고 우리로서는 의외의 모욕이 아닐 수 없다. 탁치의 논제를 미·소 중의 그 누가 선창하였고 또 찬성하였든가 하는 것은 원래부터 문제가 안 된다. 우리의 자주성을 무시하고 노예로의 국제적 철쇄가 우리를 다시금 결박하려는 이 탁치의 모욕에 그래도 이것을 인종해야 옳은 것인가? 만일 이에 대한 시인이 있다는 이는 실로 노예근성의 비굴인 것으로 자아 모독도 한계가 있을 일이니

1946년 1월 16일자 동아일보 1면에는 박헌영이 조선을 소련의 속국으로 만들기를 희망했다는 내용의 기사<조선을 소련 속국으로 / 샌프란시스코방송이 전하는 조공 박헌영 씨 희망>가 올랐다.

동아일보<조선을 소련속국으로>(1946.1.16)
지난 8일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박헌영은 UP, 뉴욕타임스 등 외국기자단에 대하여 조선에 대한 소련의 일국신탁통치를 절대 지지하며 5년 후 조선은 소련의 1연방으로서 참가하기를 희망한다고 언명하였는데 이 통신이 미국에 전하여지자 금 15일 오전 7시 5분 샌프란시스코에는 이 뉴스를 전하는 동시에 과연 조선인은 소연방의 1 연방이 될 것을 희망하는가 하는 격월한 언사의 힐문이 있었다.

동아일보는 박헌영이 “조선을 소련의 속국으로 만들기를 희망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미국 방송을 인용해 보도한 사실에 대해 ‘오보’라고 해명하지 않고 박헌영에 대해 사과를 하지도 않았다. “이 사건은 ‘미군정의 여론공작’이었다. 미군정은 박헌영·존스턴 회견을 ‘여론공작 차원에서 적극 활용함으로써 국내의 반탁운동을 반소·반공운동으로 각인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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