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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대량 해직하고 언론자유투쟁 폄하한 조선일보

조선일보가 파면 기자 백기범과 신홍범을 복직시키겠다는 약속을 3개월이 지나도 지키지 않자 한국기자협회 조선일보사 분회는 1975년 3월 6일 긴급 임시총회를 열고 편집국장단의 인책 사퇴를 요구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장 방우영은 "제작 거부를 계속하면 전원 파면하고 부·차장들만으로 신문을 제작하겠다"고 발표하며 기협 분회장 정태기를 비롯한 분회 집행부 5명 전원을 파면했다. 기자들이 제작 거부에 들어가자 부·차장들이 다른 신문 기사를 베끼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그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냈다.

조선일보 <신문 제작 거부 사태에 관한 우리의 견해>(1975.3.11.)


농성 엿새째인 3월 11일, 기자 16명이 파면, 37명이 무기정직을 당했다. 조선일보사는 경비원을 포함한 외부인을 동원해 농성하던 기자들을 완력으로 끌어냈고 경찰이 이들을 강제 해산시켰다. 또한 신문 1면에 사고(社告)를 실어 해직 기자들을 비난했다.


1975년 3월 11일자 신문 1면에 실린 <신문 제작 거부 사태에 관한 우리의 견해 - 외부의 개입을 배격하며 자주정론을 다짐한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갖은 고초를 겪고, 숱한 난관을 뚫는 모진 시련을 경험하는 동안, 조선일보는 생명있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한 번도 언론 본연의 사명을 저버린 일이 없음을 자부한다. (중략) 조선일보는 근래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서 마땅히 확립되어야 할 위계질서가 공허한 명분의 미명 아래 들뜬 감정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적지않이 우려하고 있었던 만큼 조선일보 자체의 확고부동한 질서 확립을 위하여는 어떠한 희생도 각오하고 소신을 관철하고야 말 것이다.

이 글의 "언론 본연의 사명을 저버린 일이 없음을 자부한다"는 문장은 후안무치한 역사 왜곡이다. 일제강점기에 친일파가 창간한 신문으로 일본제국주의와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갖은 아부를 다한 것은 '언론 본연의 사명을 저버린 일'이 아니었던가.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 아래서 독재와 타협하고 반민주적 행태 옹호한 일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이런 점을 차치하더라도, 아무런 배경 설명 없이 이 글을 본 독자들은 갑자기 이런 뜬구름 잡는 사고는 무엇인지 의아했을 것이다. 조선일보가 왜 이런 장문의 '사고'를 1면에 실었는지는 같은 날 1면 하단에 실린 <조선일보사 독자 여러분께>라는 '5단 통 광고'를 읽어야 알 수 있다.

조선일보 1면(1975.3.11)

광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퇴사동료의 복직운동에서 비롯된 젊은 기자들의 행동이 기자 본연의 임무인 신문 제작이라는 사명을 포기하고 상궤를 일탈하여 다중에 의한 극한행동으로 진전했고 급기야 외부세력과 결탁하여 해사행위를 감행하기에 이르렀으므로 (중략) 농성 중인 기자 가운데서도 그들의 주장이 과격하고 비리함을 깨닫고 있음에도 배신자라는 규탄을 받기 두려워 마지못해 참가하고 있는 기자가 대다수입니다.
조선일보 <천주교사제단과 민주회복국민회의명의의 성명에 대한 우리의 견해2>(1975.3.14)




이뿐만 아니라 조선일보는 3월 14일자 1면에 <천주교사제단과 민주회복국민회의 명의의 서명에 대한 우리의 견해 2>를 실어 궤변의 극치를 보였다.


이 사고(社告)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앞서 3월 13일에 발표한 <기자들의 해임 사태에 관하여>라는 성명서를 걸고 넘어졌다. 조선일보는 다음과 같이 함세웅 신부를 '단체 명의 도용자'로 몰아붙였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주요 멤버이며 민주회복국민회의의 대변인인 함세웅 신부가 개인적으로 두 단체의 전체 의사를 도용하였거나 그 중 소수가 다수에게 강요함으로써 만들어진 성명서로 보고 주로 함세웅 신부를 향하여 연민의 정을 가지고 말하려 한다.

조선일보의 말처럼 명의 도용이 사실이라면 사제단이 그를 문책했을텐데 당시 그런 일은 없었다. 사제단의 성명서는 "파면 또는 해임된 기자가 이 나라의 자유언론 실천을 위해 피나는 투쟁을 해온 양심적이며 올바른 기자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이 나라의 언론의 앞날을 위하여 극히 불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조선일보가 자신의 지면을 빌려 기자의 파면을 정당화하고 있음은 곧 스스로 자유언론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다"고 일갈했다.


조선일보사의 회유 또는 압력으로 복귀한 이들을 제외한 남은 32명은 3월 21일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를 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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