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육군기념일에 제하야(1939~1940.3.10.)
최종 수정일: 2020년 2월 18일
1937년 일제의 중국 침략 이후 줄곧 조선의 협력을 독려하고 일제 군대, 일 왕실을 찬양하던 조선일보는 일제의 육군기념일, 침략 기념일을 기리는 사설과 기사도 남발했다.

조선일보는 1939년 3월 10일 조간 1면에 게재된 사설 <육군기념일에 제하야>에서 “성전 목적을 달성하기까지에는 아직도 허다한 파란곡절이 만흘거이고 보매 국민일반은 거국일치만이 승리를 좌우한다는 생생한 교훈을 주는 이 기념일을 계기로 더욱 혼연일치가 되어 성전기념목적달성에 매진치 안흐면 안될것이다”라면서 조선민중이 일제의 침략전쟁 수행을 위한 ‘거국일치’, ‘혼연일치’ 할 것을 요구했다.
“(일본 육군)기념일을 계기로 더욱 혼열일치가 되어 성념기념목적달성에 매진치 않으면 안 될 것”
1939년 7월 7일 조간 1면에 게재된 사설 <지나사변 이주년>에서도 “최후의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결코 간과를 거두지 안흘 결심을 한 우리로서는 과거 이년동안의 혁혁한 전과에 … 동시에 국가 총력발휘와 국민정신 앙양에 협력하여 상하군민일치, 과업달성에 매진하여야 한다. 총후 국민은 모름지기 이 기념일을 다가치 과거를 감사하고 동아신질서 건설에 대한 불퇴전 결의를 새로히 함으로써 광의깁게 마지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언명, 조선민중이 일제의 침략전쟁 수행 협력에 적극 매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1940년 3월 10일 조간 1면에 게재된 사설 <육군기념일에 제하여... 황군의 무운장구를 축함>에서도 조선일보는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것을 “제국은 단호히 기하여 로국의 제국주의 정책을 반대하여 로서아에 선전을 포고하엿스니 이것이 곳 일로전쟁이다... 삼월 십일 봉천대회전에서 최후적 승리를 전하여 로군을 극동으로부터 완전히 구축하고 전동양을 백인의 마수로부터 해방케하엿다”라고 기술, ‘러시아의 제국주의 정책에 반대하여 동양을 해방한 전쟁’이라 미화하는 보도를 하였다.

"러시아에 선전을 포고하였으니 이것이 곧 러일전쟁... 3월 10일 봉천대회전에서 최후적 승리를 전하여 러시아군을 극동으로부터 완전히 구축하고 전동양을 백인의 마수로부터 해방케 했다"
그러면서 “그러므로 황군의 사명은 일층 중대하고 육군기념일의 의미는 일층 깁다. 즉 금차 사변의 성불성은 황국흥폐 될뿐 아니라 동양의 성애 이에 말혓나니 이 사변이 완전 처리되는 날엔 황군의 광휘는 더욱 뚜렷하고 제국의 지위는 그야말로 만대에 진개할 것이다. 성전 사년에 사백여주 황군의 지휘하에 잇고 점령지구엔 신정권의 조광이 각각으로 … 동시에 동양에는 동양인의 동양이 건설될날이 가까온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 의의기픈 육군기념일에 제회하여 동아신질서의 건설이 앙양 진행될 것을 확신하는 동시에 광휘잇는 황군의 무운이 장구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라고 기술, ‘동양을 지배하려는 백인을 물리쳐 흥아신질서를 건설하는 황군의 무운이 장구하기를 기원한다’는 보도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