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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항쟁'에 대한 제대로 된 보도 없어.

동아일보는 ‘4·3항쟁’이 터진 지 사흘 뒤인 4월 6일자 2면 하단에 <4일 제주도서 / 총선거 반대 폭동 / 사상자 12명 발생>이라는 기사를 2단으로 내보냈다. 내용은 단 몇 줄뿐이었다.

동아일보< 4일 제주도서 총선 반대 폭동>(1948.4.6)
5일 시공관에서 개최된 총선거 촉진 대강연회 석상에서 조 경무부장이 연설한 바에 의하여 4일 제주도에서는 총선거를 반대하기 위한 좌익분자들의 파괴행동이 있었다는데 그 피해 상황은 경찰관서 습격이 11개소, 경찰관 사망이 4명, 일반청년 사상이 8명, 경찰지서 습격이 5개소나 있었다한다.

동아일보 4월 7일자 2면에는 미군정청 경무부장 조병옥이 발표한 ‘제주폭동 사건의 진상’이 그대로 실렸다. 동아일보 기자가 현장을 취재해서 보낸 기사는 전혀 없었다.

동아일보<제주도서 폭동사건>(1948.4.7)
3천만 민족의 총선거를 방해하려고 공산주의자들의 집단인 각 단체와 개인으로서 가진 모략과 수단을 희롱함으로써 선량한 겨레들이 공분을 스스로 사고 있거니와 지난 4일 제주도 전역에 걸쳐 봉기된 좌익폭동으로 말미암아 한때 치안은 교란되고 민심은 흉흉하여져 총선거 등록 실시의 사무를 정돈 상태에 빠지게 하였다.

미군정의 무자비한 진압작전으로 제주도가 핏빛으로 물들어가는데도 동아일보는 4월 13일까지 침묵을 지키다가 4월 14일자 2면에 ‘제주 발 조선통신’을 인용해서 짤막한 기사를 내보냈다. 동도경비사령부가 발표한 바에 다르면 4월 3일부터 7일까지 사망자는 22명, 중경상자는 50명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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