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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거짓말 '민정이양'과 조선일보2

5.16쿠데타 당시 '민정이양'을 약속했던 박정희는 그 후 몇 차례 말을 바꾸면서 이른바 '민정이양 번의'라는 희대의 논란을 자초했다.

'군복 벗으면 민정 참여 가능'이라는 조야한 논리를 내세웠던 박정희, 그러나 1963년 2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박정희의 민정 참여에 반대한다고 밝히자 잠시 의지를 꺾는 제스처를 취했다. 2월 18일 박정희는 '정국 수습 9개안'을 발표하고 이를 정치권이 수락한다면 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조선일보는 다음날 사설을 통해 적극 지지했다.


조선일보 <제3공화국 건국 도상의 전환점에서>(1963.2.19.)
우리는 원만한 민정이양을 통하여 제3공화국을 창건하는 길을 트기 위해 발표된 박정희 의장의 2.18성명을 보고 안도의 숨을 쉬게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중략)...박 의장의 9개조 제안은 이것을 수락하는 데 인색하여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중략)...우리는 이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군복을 벗으면 민정 참여 가능'에도 지지, '9개조 받아들이면 민정 불참'에도 지지, 그냥 박정희가 말하면 그게 뭐든 지지하는 모양새다.

이후에도 박정희는 '민정 불참'을 명백히 공약한 2.27성명, 돌연 '군정 4년 연장'을 제의한 3.16성명 등 수 차례 말을 바꿨다. '군정 4년 연장'을 밝힌 3.16성명 직후에는 언론에 계엄이나 다름 없는 '사설 게재 불가'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이 때 '3.16성명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정부 방침에 따라 사설을 게재하지 않았다.


6월 1일, 박정희는 외신 인터뷰에서 "대통령으로 출마하는 경우 군복을 벗을 것"이라 말하더니 석달 만인 1963년 8월 30일, 실제로 전역했다. 민정을 주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때 조선일보는 8월 31일자 1면 기사 <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대장 전역식>을 통해 '민정 참여' 선언을 그대로 받아썼다.


조선일보 <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대장 전역식>(1963.8.31.)
5.16군사혁명의 영도자였던 그는 전역 인사를 통해 ...(중략)..."조국 재건을 위해 항구적인 국민혁명의 대오, 제3공화국의 민정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고 그의 진로를 밝혔다. 박 의장은 또 ...(중략)..."다시는 이 나라에 본인과 같은 불운한 군인이 없도록 하자"고 호소했다.

9월 2일자 조선일보 사설 <박 의장의 대통령 입후보 확정과 혁명정부가 가질 금후 자세>는 애초 약속을 뒤집고 민정 장악에 나선 박정희에 따뜻한 덕담을 건넸다.


조선일보 사설 <박 의장의 대통령 입후보 확정과 혁명정부가 가질 금후 자세>(1963.9.2.)
혁명 주체세력의 차기 민정 참여 방침은 가까스로 움직일 수 없는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중략)...그동안 군사혁명의 상징으로서 박 의장이 되씹은 인간적 고뇌는 자신의 고취에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중략)...우리는 박 의장의 입후보 확정이라는 중대한 정치적 포석 뒤에 올 조리 정연한 혁명정부의 태세 정비가 있기를 바라면서 이를 주목하는 바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민간인 박정희'의 '군사정권'에게 "공명정대한 선거 관리"를 부탁했다. 이는 불과 한 달 만에 천진한 낙관임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