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4호'와 민청학련, 굴종의 조선일보

쿠데타와 폭압으로 권력을 연장한 박정희의 철권통치는 폭주하여 긴급조치 4호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1974년 4월 3일 박정희는 긴급조치 4호를 내놓고 시위를 하면 학교 폐고, 위반자 사형 등 섬뜩한 조치를 선언했다. 여기에는 '민주청년학생연 동조 엄단'이 포함되어 있어 대표적 용공 사건인 '민청학련 사건'을 예견하고 있었다.

이에 조선일보는 박정희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쓰기만 했다. 그야말로 나팔수가 된 것이다.


조선일보 <데모학교 폐교 가능>(1974.4.4.)

조선일보는 긴급조치 4호가 선포된 다음날인 4일, 1면 전체를 긴급조치 4호 선포로 채우면서 보기만해도 섬뜩한 박정희의 대국민 위협을 그대로 받아썼다. 박정희는 당시 특별담화에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에 "반국가적 불순세력의 배후 조종 하에 그들과 결탁하여 인민혁명을 수행하기 위한 소위 통일전선의 조하조직"이라는 혐의를 덧쓰웠다. 후일에 이는 모두 사실무근으로 밝혀졌고 정보기관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옥살이를 했던 민청학련 학생들 다수가 무죄와 함께 배상을 받았다.

조선일보는 매일같이 긴급조치 4호를 받아쓰기만 했고 4월 7일에도 <불순세력에서 학원 사회 보호> 등 앵무새 같은 기사만 반복했다.


조선일보 <불순세력에서 학원, 사회 보호>(1974.4.7.)

4월 25일,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 사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고 조선일보는 여기에도 동조했다. 4월 26일 사설 <불순세력의 학원 침투>는 민청학련을 애초에 '불순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조선일보 <불순세력의 학원 침투>(1974.4.26.)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공산계열의 불순세력이 우리 학원에 침투하여 다대수 학생들의 움직임에 편승하면서 자기들의 독자적 계획을 획책했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 학원의 불행...(중략)... 외부의 불순세력 침투로부터 자기들의 학원을 수호한다는 용기와 결단력을 가져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는 시민들의 결사 행위에 매번 '외부 세력' 타령을 하는 것은 조선일보의 고질병인 모양이다.

5월 27일 비상군법회의 검찰부가 민청학련 사건 조사결과를 추가로 발표했는데 역시 섬뜩하고 기만적인 그 발표를 조선일보는 모두 받아쓰기만 했다.


조선일보 <폭력혁명...공산화 기도, 학원에 적화기지 구축>(1974.5.28.)
"폭력혁명과 공산화 기도, 학교에 적화기지 구축, 반정부 세력 조직화, 동원자금 천만원, 일본 공산당 무기지원 약속, 대구 서울에 김일성 전략 교양 아지트"

조선일보가 받아쓴 민청학련과 그 배후로 지목된 인민혁명당까지, 훗날 모두 조작이었음이 밝혀졌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종교인들까지 끌어들여 인혁당과 지하공산세력으로 몰았는데 당시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조선일보는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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