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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통일론'을 크게 보도하는 동아일보

통일을 위해 정당과 사회단체를 망라하는 ‘총본부’를 두겠다고 밝힌 이승만은 6월 29일 ‘민족통일총본부’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민총의 총재는 이승만, 부총재는 김구였다. 민총은 그 이후 단독정부 수립운동을 강력하게 퍼나갔다. ‘단정’을 반대하던 김구가 그때 이승만의 독선적 운동에 왜 동조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1946년 7월 9일자 동아일보 1면에는 이승만의 요령부득인 ‘통일론’이 크게 실렸다.

동아일보<통일은 독립의 제1보>(1946.7.9)
이승만 박사는 8일 오전 11시 돈암장에서 비서처를 통하여 출입기자단에게 다음과 같은 담화 발표와 문답이 있었다. 이번에 설치된 민족통일총본부는 일반 민중의 요구를 따라서 한 것이니 민족 통일이 독립 완성의 초보임을 각오하는 모든 남녀는 크게 환영하는 터이다. (중략) 문 : 합작 문제에 대한 이 박사의 의향은? 답 : 이 문제에 대하여는 이미 설명한 바 있으니 이제 더 말할 것도 없다. 문 : 4상회의에서 조선 문제가 토론되리라는데 이에 대한 박사의 견해는? 답 : 우리가 바라는 것은 모스크바 협정이 아직 실행되지 못하였으므로 한국에 대한 중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였는데 우리가 갈망하고 있는 바를 연합국 간에서 잘 알 것이므로 4상회의에서 무슨 발표가 있을 줄 믿는다.

당시 분단된 한반도에서 남과 북의 통일은 ‘좌우합작’ 또는 ‘연합’형식 말고는 달리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다. 6월 11일 독촉 전국지부장대회에서는 총재로 추대된 이승만은 “소련 사람을 내보내고 공산당을 이 땅에 발 못 붙이게 하자”고 주장한 바 있었다. 그런데 7월 9일 기자단에 대한 담화와 문답에서는 “민족통일이 독립 완성의 초보”라고 아리송한 말을 했다. 그리고 합작 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의견을 내지 않았다. 나중에 드러났듯이 이승만은 오직 남한 단독정부 수립과 ‘무력통일’‘북진통일’말고는 아무런 생산적 정책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