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과 한민당'을 추종하는 동아일보

1947년 1월 20일 입법의원에서 이승만 추종자들과 한민당 의원들은 중도파 의원들이 기권한 가운데 ‘반탁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동아일보는 1월 22일자 1면 머리에 <입의에서 반탁을 결의 / 전 민족의 총의를 표시 / 신탁 반대안을 상정 / 44대 1로 가결 / 민족사에서 영원히 빛날 대사실>이라는 기사를 올린 데 이어 그 바로 옆에 <김준연씨의 방청기>를 실었다.

동아일보<입의에서 반탁을 결의>(1947.1.22 )
지난 13일 41명의 연서로 입법의원에 제출되었던 신탁통치반대결의안은 재작 20일 오후7시 15분경 드디어 입법의원을 통과하였다. 지난 11일 공보부를 통하여 미·소 양군 사령관의 미소공동위원회에 관한 교환서한이 발표되자 3천만 동포는 악연히 대경실색하였던 것이다. 그는 남조선미주둔군사령관 하지 중장이 결국 소련대표 스티코프 중장이 작년 3월 20일 미소공위 개회 벽두에 행한 연설 중에서 주장한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전면적으로 지지하는 정당이나 사회단체가 한국임시정부 수립에 참가시키지 않겠다!”는 것에 동의하였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입의의 결의를 보고 김준연씨의 방청기>(1947.1.22)
지난 십삼일 사십일병의 연서로 입법의원에 제출되었던 신탁통치반대결의안은 재작이십일오후칠시 십오분경 드듸어 입법의원을 통과하였다. 지난 십일일공보부를 통하야 미소양군사령관의 미소공동위원회재개에 관한 교환서한이 발표되자 삼천만동포는 악연히 대경실색하였던 것이다. 그는 남조선미주둔군사열관 하 지중장이 결국 소련대표스틔코중장의 작년삼월이십일 미소공위개회벽두에 행한 연설중에서 주장한 “모스크바삼상회의결정을 전면적으로 지지하는 정당이나 사회단체가 아니면 전면적으로 지지하는 정당이나 사회단체가 아니면 한국임시정부수립에 참가시키지안켔다!”는 것에 동의하였기 때문이다.

1947년 1월 20일 입법의원에서 이승만 추종자들과 한민당 의원들이 중도파 의원들이 기권한 가운데 “반탁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민족사에 영원히 빛날 대사실‘이라고 보도했다. 한민당과 이승만을 추종하는게 그치는게 아니라, 칭송하고 있는 보도였다.


미군정 산하의 입법의원이 ‘반탁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남조선 주둔군사령관이자 군정 최고책임자인 하지에 대한 정면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이승만 추종자들과 한민당이 그것을 주도했기 때문에 하지는 매우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며칠 뒤에 사태는 뜻밖의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한민당은 반탁에서 발을 빼고 김구는 ‘절대 반탁’과 ‘좌우합작’이라는 외길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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