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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의 의거'를 '대불경 사건'으로 보도

1932년 1월 10일자 2면 머리에 <대불경 사건 돌발, 어로부에 폭탄 투척>라는 제목으로 이봉창의 의거를 대불경사건으로 보도했다.

동아일보<대불경 사건 돌발>(1932.1.10)
8일 오전 11시 44분경 노부가 국정구 앵정정 경시청사 앞에 이르렀을 적에 봉배자 선내로부터 돌연 노부 제2양채의 궁내대신 승용의 마차에-어료차 전방 약 18 간에 수류탄에 같은 물건을 던진 자가 있어서 궁내대신 마차의 좌후부 차륜 부근에 떨어져 차체 바닥에 엄지손가락만한 손상 두셋을 나게 하였으나 어료차 기타에 이상이 없이 오전11시 50분에 무사히 궁성에 환행하셨다.

동아일보는 사건 당시 어느 신문도 쓰지 않았던 ‘대불경’이란 표현을 ‘대담하게’썼다. ‘대불경’은 일본제국 아래서 신민이 일왕에 대하여 쓸 수 있는 극존칭에 해당되는 표현이라 할 것이다. 동아일보의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 보도에서 내무성 발표를 그대로 썼을 뿐이고, ‘대불경’은 말 할 것도 없고 ‘불경’이란 표현도 쓰지 않았다.


1932년 1월 18일자 동아일보 1면에는 <불경 사건으로 요구서를 제출, 상촌 영사가 진 씨에게>라는 기사가 실렸다.

동아일보<불경 사건으로 요구서를 제출, 상촌 영사가 진 씨에게>(1932.1.18)
불경 기사 게재 사건은 국제 예의에 어긋날 뿐 아니라 우리 황실 및 국민에의 중대 모욕으로 귀국 정부의 취체 불철저에 기인한다. 이들 신문은 모두 국민당 기관지임에 비추어 그 정상이 일층 중대하다.

이봉창의 의거가 발생하자 중국 언론은 당시의 불편한 중·일 관계로 보아 기다리던 단비를 만나 듯 신나게 그 사건을 대서특필했을 것이다. 동아일보가 이런 사실을 보도한 것은 중국 사정을 알리겠다는 취지라기보다는 이봉창의 의거를 ‘불경’으로 판단에 따른 것으로 친일언론임을 자백한 셈이다.


2월 3일자 나온 기사<모종 사명 띠고 김조이 잡입? 경찰은 그 종적을 엄탐 중, 시골부인으로 변장>는 독립운동가들의 동태를 동아일보가 누설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다.

동아일보<모종 사명 띠고 김조이 잠입?>(1932.2.3)
얼마 전에 모종의 중대 사명을 띠고 조선 안으로 들어온 묘령의 여성이 있다 하여 경향의 경찰들은 눈에 불을 켜고 그의 행방을 엄탐 중이라 한다.

당시 조선어 신문들은 국내에서 잠행 중인 독립운동가들의 동향에 관하여 가끔 보도를 함으로써 일제 경찰에게 편의를 제공한 결과를 빚어내기도 했다.(중략)신문을 본 친지들은 내막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신문사를 찾아가서 그들의 행방을 묻거나, 취재 편의를 제공하기도 했을 것이다. 일제가 ‘민족주의자’를 자처하는 인사들에게 조선어신문 발행을 허가한 이유 가운데는 ‘독립운동가들에 관한 정보 수집’이라는 목적도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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