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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지원병제도'를 '성은'으로 다루는 동아일보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까지 가세해서 “조선의 청년들이여, 지원병에 응모하라”고 선동했기 때문인지, 일본군인이 되면 하루 세 끼는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젊은이들이 많았기 때문인지, 전국 방방고곡에서 3천여 명이 입대하겠다고 지원했다. 총독부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202명 합격자를 발표했다.


동아일보 6월 15일자 사설<지원병훈련소 개소식>은 지원병훈련소가 문을 연 것을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했다.

동아일보<총후보국의 강조>(1938.4.26)
조선 통치상 거대한 사실로서 일반의 주목과 관심을 끌던 육군지원병제도는 4월 1일에 발표한 이래 그 실시에 향하여 착착 준비하여 오던 바 지원자 3천여 명 중에서 2백여 명의 최초의 합격자가 선발되었으므로(중략)이 제도가 실시케 됨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정세의 변화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대륙 정책의 수행에 있어서 조선의 중요성이 가중하여졌다는 것도 들 수 있는 것이다(중략)장래 국가의 군인으로서 최초의 선발을 당한 합격자도 마땅히 그 임무가 중차대함을 자각하고 그 본무를 다하도록 노력하여 이 제도의 순조로운 성장 발전에 공헌한 바가 있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그 무렵 일제는 ‘일시동인(멀고 가까운 사람을 친함에 관계없이 똑같이 대한다는 뜻. 일본천황이 내지인과 조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이라는 미명 아래 조선민족의 정체성을 아예 말살하는 ‘황민화 정책’을 펴고 있었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일제가 조선인들에게도 병역 의무를 지우려 하는 것이 ‘일시동인’의 ‘성은’인 듯이 감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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