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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결정 감사 총선거 촉진대회'를 흥분한 필치로 보도

1947년 9월 23일 유엔 총회는 조선 문제를 상정하기로 의결했다. 미국이 조선 문제를 유엔에 상정함에 따라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이 백지화할 수밖에 없게 되자 소련은 9월 26일 양군이 조선에서 동시에 철수하자고 제안했으나 미국은 바로 이튿날 “소련이 미소공동위원회의 대상 문제에 관해 미국 측 입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공위 재개나 소련의 양군 철수 제안을 거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동아일보 10월 1일자 1면 머리에 올린 사설<동시철병안과 우리의 주장>을 통해 미국의 주장을 적극 지지하면서 소련의 동시철군 제안을 ‘비현실적 관념론’이라고 공격했다.

동아일보<동시철병안과 우리의 주장>(1947.10.1 )
지난 9월 26일 61차 공위 본회담에서 소련 측 대표는 성명서를 발표하여 조선 문제 해결에 있어서 공위의 불성공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 해결책을 조선 사람에게 일임하기 위하여 1948년 초에 미·소 양 주둔군의 동시 철퇴를 주장하였다. 미·소 양 주둔군 철퇴 문제는 미 국문차관 로베르씨의 4국회의 제안 중에도 포함되어 있고 금반 유엔 총회에 마샬 씨의 의하여 제출된 신탁 없는 조선독립안에도 당연히 포함된 것으로 이제 새삼스럽게 우리를 놀라게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동아일보는 이 사설에서 미국의 ‘조선 문제 유엔 총회 상정’이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완전히 파기하고 조선민족의 분단을 기정사실화 할 수도 있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고 소련이 오로지 신탁통치만을 고집하고 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그런데 그 이후 유엔총회가 남조선 단독선거를 결정함으로써 분단이 항구화한 사실은 역사가 증명한 바 있다.


1947년 11월 14일 유엔 총회는 사회주의국가들이 불참한 가운데 미국의 결의안을 43대 0으로 가결했다. 소련이 제안한 미·소 양군철병안은 34대 7로 부결되었다. 동아일보는 한민당 계열의 단체들이 주최한 ‘유엔 결정 감사 총선거 촉진대회’에 관해 자못 흥분한 필치의 기사를 11월 16일자 2면에 실었다.

동아일보<유엔결정감사 국민대회>(1947.11.16 )
한배겸 성조께서 동방에 내리시고 또 3천 단부를 거느려 배달나라를 창건하신 4280주년의 거룩한 개천절 봉축식을 장엄하게 끝마치고 계속하여 지난 15일 상오 11시 반 때마침 유엔 총회에서 조선위원단 수립안이 43 대 09으로 가결된 외전이 반가움을 전하는 때를 같이하여 서울 운동장에서는 비분감격에 싸인 10수만 서울시민과 청년단체 등이 마당과 인원을 함께하여 열린 유엔 결정감사와 총선거 촉진 국민대회는 멀지 않아 자주독립을 약속받은 조선국민에게 새로운 희망과 굳은 결의를 가지게 하였다.

유엔의 결정에 감사하는 한민당 세력이 미국과 유엔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발표한 ‘결의문’은 비문과 악문의 표본으로 당시 그 정치세력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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