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통폐합 '언론계 개혁' '혁명적 조치'라 지지한 조선일보

신군부는 1980년 5월 광주 항쟁과 관련해 제작을 거부한 언론인들을 구속한 데 이어 7월 9백 명이 넘는 언론인을 강제 해직시켰다. 그런 다음 1980년 11월 12일 전대미문의 대규모 언론 통폐합 계획을 발표했다. 조선일보는 11월 15일자 1, 2, 7면에 언론 통폐합 관련 뉴스를 보도했다.

조선일보 <언론기관 통폐합 개편>(1980.11.15.)

1면에는 <언론기관 통폐합 개편>이라는 머리기사와 함께 신군부의 강압에 의해 발표된 '건전언론 육성과 창달을 위한 결의문'을 실었다. 해설기사와 사설은 신군부의 논리와 조치를 '혁명적인 조치'로 기술하며 지지하는 모양새다.

조선일보 <공익성 우선의 세계적 추세 추구>(1980.11.15.)
한국 신문협회와 방송협회의 이번 결정은 한국 언론사상 일대 혁명적인 조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비록 자율적인 개혁의 형태이긴 하지만, 그 대상의 규모가 일천한 우리 언론사에 일찍이 유례가 없었던 방대한 것인데다가 내용과 방향 또한 새롭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11월 16일자 조선일보는 강압적인 언론 통폐합을 여전히 '혁명적인 것'으로 기술하는가 하면 '언론계 개혁'으로 설명하고 있다. 1면 머리기사 <두 민방 TBC·DBS, KBS에 흡수>는 통폐합의 내용을 소개했다. 7면에서는 각계의 반응이라며 공무원·회사원·학생·주부 등의 입을 통해 그 조치를 찬성하는 내용을 실었다.

조선일보 <"증면 계기...다양한 지면을">(1980.11.16.)
"언론도 '새 시대'를 맞으며 자체적으로 모순 제거에 나선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중략) "이런 점으로 미루어볼 때 방송의 사유개념을 규제하고 매스컴의 독과점을 방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이번 조치가 건전언론 육성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중략) "또 언론이 사회적 책임을 잊은 채 특정기업을 비호하는 인상도 있었던 것이어서 이번 조치가 발전적인 결과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조선일보 보도를 보면 전두환 정부의 언론 통폐합조치는 신문사의 난립을 막고, 방송의 공영화를 이루며, 언론인의 자질향상을 위한 '혁명적 조치'이고 국민 역시 이를 찬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언론통폐합의 폐해는 매우 심각했다. 신군부는 강제해직과 언론 통폐합을 통해 언론의 맹종과 자발적 충성을 유도해냈다.


강준만은 <한국현대사 산책-1980년대편>에서 언론 통폐합의 부작용을 설명했다. 먼저 언론사들에게 전두환에 대한 충성 경쟁만이 유일한 생존책임을 각인시켰다. 충성심이 가장 강한 조선일보가 고속성장했다. 언론매체의 독과점을 제도화하는 등 언론이 거대기업화했다. 순응 언론인들에게 특혜를 제공함으로써 '기자문화'를 타락시켰다. 이같이 언론 통폐합은 언론기업과 언론인을 정권 안보의 이용물로 삼는 한편 언론을 특권계급화하며 한국 언론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쳤다.


1980년 연말, 언론기본법이 제정됐다. 언론 통폐합이란 폭압적 조치에 이어 이전의 언론 관련법을 통합해 12월 26일 입법회의를 통과시킴으로써 언론기본법을 확정한 것이다. 문화공보부 장관의 발행정지 명령권 및 등록취소 권한을 두는 등 언론 통제를 강화했다. 조선일보는 언론에 족쇄를 채우는 법안까지 마냥 칭송하기가 무안했던지 12월 23일자 사설 <언론기본법안에의 견해을 게재해 몇 가지 제안을 했다. 문화공보부 장관의 등록취소 권한과 관련, 취소요건이 모호하기 때문에 이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물타기 제안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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