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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을 축소하고 왜곡하는 동아일보

시국이 온통 개헌문제로 시끄럽던 때 서울대 의류학과 4학년생 권인숙에 대한 경찰의 성고문사건이 발생했다. 권인숙은 1986년 5월 20일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가스배출기 제조업체인 주식회사성신에 취업했다. 6월 4일 권인숙은 위장취업을 위해 주민등록증을 위조했다는 혐의로 부천경찰서에 잡혀갔고, 형사인 경장 문귀동에게 6월 6일, 7일 두 차례에 걸쳐 성고문을 당한 것이다. 권인숙의 변호인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그 사건을 동아일보는 조선일보와 똑같이 7월 3일 사회면(7면) 1단 기사로 보도했다.

동아일보<여구속자에 가혹신문 가족30여명 항의농성 부천경찰서 몰려가>(1986.7.3 )
인천지역 구속자 가족 30명이 2일 오후 2시경 경기도 부천경찰서 1층 현관에 몰려가 “부천경찰서 조사계 문 모 형사(39)가 여자 해고근로자를 신문하면서 옷을 벗기는 추행을 했다”고 주장,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이후 동아일보의 권인숙 관련 기사는 검찰의 수사 발표가 있기까지 거의 사회면의 1단이나 2단 기사로 축소 편집됐다. 다른 신문들도 만찬가지였지만 동아일보 역시 권인숙 성고문 사건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동아일보<부천사건수사 검찰 원로변호사 지명을 신민서 요구>(1986.7.12 )
신민당「부천경찰서 사건」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박한상의원)는 12일 부천경찰서사건에 대해 원로재야변호사중에서 특별검찰관을 지명, 수사토록 해달라는 건의문을 법무부에 제출했다. 박의원등은 이 건의문에서 “여야가 인정할 수 있고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원로변호사가 이 사건수사를 맡아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을 의식화투쟁의 일환’으로 이용한다는 날조된 주장을 사실처럼 보도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제 2사회면에 실은 기사<공안당국 분석>로 ‘혁명을 위해서는 성도 도구화’했다는 당국의 날조를 제목으로 뽑기까지 했다.

동아일보< 공안당국 분석>(1986.7.17)
사건의 본질 권 양의 성 모욕 주장은 혁명과 폭력을 속성으로 하는 급진세력의 투쟁 전략 전술에서 살펴볼 때 그 진위가 더욱 분명하게 판명된다. 혁명을 위해서는 ‘성’도 도구화=좌경 의식화된 핵심 문제학생들은 그들 스스로의 의식화 과정과 조직활동 투쟁 과정에서 상호연대의식 고취, 일체감 조성 및 조직 이탈 방지 등을 위해서 ‘성’을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투쟁전술로 고문·폭행·사건조작=권 양의 수사 과정에서의 성모욕 주장에는 인간성의 침해를 빙자하여 대중의 혁명적 투쟁을 선동하려는 저의가 깔려있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과 관련해 전두환 정권은 언론사에 많은 보도지침을 내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해가 바뀐 1987년 4월 권인숙은 1년 6개월의 형 확정 판결을 받았으며 6월항쟁 이후인 7월 8일 가석방됐다. 1988년 2월 9일 대법원이 변호인단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였고 1989년에는 문귀동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이 선고됐으며, 권인숙에게는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