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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을 보내며>(1979.11.3.)

조선일보의 박정희 찬양은 11월 3일에 치러진 국장 당일 극치를 보였다. 3일 당일 조선일보 2면 사설 <박정희 대통령을 보내며>는 평서문이 아니라 경어체로 쓰였다.


조선일보 사설 <박정희 대통령을 보내며>(1979.11.3.)
오늘 3천6백만 국민을 국장으로 고 박정희 대통령을 국립묘지에 모십니다. (중략) 그 전반생은 나라 잃은 백성의 한 사람으로 살아야 하였고, 그후 반생은 분단된 국토에서 살아야 하였습니다. 5·16으로 '불행한 군인'을 자처하며 국정의 책임을 한 몸에 지님으로써 '운명의 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인'으로서 살아온 이 20년을 우리의 유구한 역사 속의 '운명의 시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고인이 이룩한 업적은 많고 뚜렷합니다. (중략) 그러나 역사는 이어져야 합니다. 현재를 살며 미래를 향하여 그것을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이 3천6백만 국민입니다. (중략) 박정희 대통령 각하, 고이 가십시오.

사설은 신문사가 지면에 공식으로 내보내는 의견이다. 위 사설은 고인 박정희에 조선일보사가 바치는 '조사(弔辭)'다. 이해하고 너그럽게 읽어 넘기려 해도 이 사설은 사실 왜곡이 지나치다. 박정희는 '천황 폐하'를 향해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이라는 혈서를 쓴 뒤 일제 지배를 받던 만주군관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일본 육사에 편입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다. 그가 '골수 친일파'였음이 분명한데도 조선일보는 "그 전반생은 나라 잃은 백성의 한 사람으로 살아야 하였"다고 썼다. 청년 박정희는 나라 잃은 백성이 아니라 '천황 폐하의 충성스런 신민'이었다.


사설은 3천6백만 국민이 박정희가 이룬 역사를 이어받아 "현재를 살며 미래를 향해여 그것을 밀고 나가야"한다고 주장했다. 유신독재와 맞서 싸우다 죽음·고문·투옥과 인권유린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박정희가 남긴 유산을 물려받으라는 것은 모욕일 뿐 아니라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조선일보가 바친 '조사'는 고인에 대한 진정한 추모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그의 죽음 이후 붕괴될 수 밖에 없는 유신체제를 지키려는 몸부림이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유신체제가 무너진 뒤 민주 정부가 들어서면 조선일보는 일제강점기에 저지른 반민족행위까지 마땅히 응징받아야 했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주와 간부가 그런 일을 앉아서 당할 리는 만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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