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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 관점'을 대변하는 동아일보

1946년 10월 2일 대구에서 끔찍한 사건이 터졌다. <한국근현대사사전>‘10월 항쟁’항목에는 그 경위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초기의 총 파업은 전평의 지휘 하에 이루어졌으나, 이후 전국각지에서 발생한 민중의 항쟁은 이미 공산당의 통제를 떠나 민중의 쌍힌 불만이 격렬하게 터져 나온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각지의 경찰서. 파출소. 면사무소가 파괴도고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명박 정권 시기인 2010년 3월, 국가기구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대구 10월 항쟁에서 희생당한 이들의 유족에 대한 사과와 위령사업을 지원하라”고 정부에 권고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동아일보는 10월 4일자 2면 머리에는 <대구 중심으로 파업단 소동 / 경찰서를 습격 점거 / 경북 일대에 삼엄한 계엄령>‘이라는 제목 아래 ’사건 경위가‘ 보도되었다.

동아일보<대구 중심으로 파업단 소동>(1946.10.4)
1만여 군중과 경관이 충돌되어 경찰서를 점거한 소동이 대구를 비롯하여 경북 일대 각지에서 발생되었다. 9월 25일 이후 대구에서는 40여 공장에서 파업을 단행하여 생산 가 부분에 대혼란을 일으키고 있던 바 1일 밤중에서 2일 아침에 걸쳐 파업 중에 있던 노동자들과 전문·중등학교 학생 및 일부 시민들이 합류된 1만여 명의 군중이 대구경찰서를 습격 포위하여..

‘10월 항쟁’의 원인과 확산 과정은 동아일보 보도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대구의 민중이 봉기한 원인이 식량난과 미군정의 무책임한 대응, 시위 군중에 대한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과 발포, 특히 친일 경찰에 민중의 증오였다는 사실은 전혀 보도하지 않은채 민군정의 명령에 따르는 경찰의 강경한 진압과 공직자의 피해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10월 5일자 2면에 실린 기사가 바로 그랬다.

동아일보<경관 사망자 53명>(1946.10.5)
경북 일대의 소동은 3일 하오 현재 충남경찰부의 응원으로 대부분 진압되었으나 계엄령은 계속 중이고 아직도 왜관, 성주, 군위, 영천의 4개 경찰서는 소동군중에 점거된 채 있다. 이어 3일 상오 3시 영천군수 김영기 씨가 피살되는 등 사태는 곳에 따라 험악하며 이날 현재로 경관직 사망자는 무려 53명이나 되고 폭민 중 피검자는 2백여 명이나 된다.

동아일보는 10월 6일자 2면 머리에 실린 기사 역시 철저히 미군정의 관점을 대변하고 있다.

동아일보<전율할 영남소동의 그 후 소식>(1946.10.6)
대구를 중심으로 한 일대 소동은 의외로 그 범위가 크고 경·민 사이에 사상자와 피검자가 많은 점을 보아 심상히 보아 넘기지 못할 사건이다. 더구나 5일 현재로 경무부에 들어온 현지 보고에 의하면 대구에서는 약 1백명 가량의 죄수들이 형무소를 탈옥 도주하였고, 소동은 경남 통영에서 다시 4일은 충북 영동 지방으로 파급되어 3,4백명이 경찰서를 습격한 사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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