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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박정희에게 '찬사'를 보내는 동아일보

1979년 10월 16일 저녁 7시 40분 청와대 옆의 궁정동 '안가'에서 총성이 울렸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짜 2면에 <비상 사태와 국민적 각오 / 박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 자율적 질서 유지를 당부한다>라는 사설을 실었다.

동아일보<비상 사태와 국민적 각오>(1979.10.27)
박 대통령의 서거 후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권한대행에 취임하고 정부는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신속하게 질서유지에 임하고 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인데 오늘의 국가비상상태를 맞아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북괴의 책동과 사회질서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오열의 장난이다.

유신체제를 살리기 위한 동아일보의 노력은 10월 29일자 2면 사설<국민적 저력 보인 평온 유지>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동아일보<국민적 저력 보인 평온 유지>(1979.10.29)
지난 주말에 일어난 돌발사태 이후 국내외적으로 평온과 질서가 거의 완벽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은 크게 다행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이 지닌 국민적 저력을 세계에 과시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지금까지 국민이 우려하던 혼란을 만족스럽게 막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각계각층이 합심하여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오늘의 난국을 수습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11월 13일 박정희의 ‘국장’이 치러졌다. 동아일보는 1면 머리에 <고 박정희 대통령 국장 엄수>라는 기사를 올리고 3면에 <박정희 대통령을 장송함>이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동아일보<박정희 대통령을 장송함>(1979.11.3)
우리는 국민과 더불어 충심으로 그의 명복을 빌면서 앞으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국민적 결의를 다짐하고자한다. 이제 고인을 국장의 예로 보냄에 있어서 그의 지도자로서의 공과를 논하는 것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나 그가 우리 현대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적어도 그가 강인한 의지력과 무서운 추진력으로 일면 건설, 일면 국방을 밀고 나가 우리 한국의 국가적 기초를 마련하고 앞으로는 우리 민족이 무한한 발전할 수 있는 터전과 자신감을 남겼다는 사실만은 그이 지지자건 반대자건 다 같이 동의하리라고 믿는다.

이 사설은 박정희의 상습적 헌정 파괴와 쿠데타,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수시로 선포한 긴급조치와 비상사태, 그리고 집권 18년 동안 헤아릴 수도 없이 자행한 인권 탄압과 반민주·반민족적 행위들에 관해서는 한마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면 종신집권을 위해 민중을 탄압하고 민주주의 숨통을 조인 그를 비판하는 말이 당연히 나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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