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정부는 국민에게 수공의 공포를 자아낸 ‘금강산 댐’ 사건을 발표했다. 건설부장관 이규효가 10월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이 휴전선 북방 금강산 부근에 건설 중인 댐으로 인해 한강 하류지역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며 금강산댐 건설계획을 즉각 중지하라고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그 배후는 북한정보를 독점하고 있던 안기부였다. 동아일보는 10월 31일자 1면 머리에 그 성명 내용을, 2, 3면에 관련기사를 싣는 등 법석을 떨었다. 2면 사설<금강산댐의 잠재 위협>은 정부의 논리를 그대로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지난 21일 착공한 북한의 금강산 수전댐은 한마디로 이를 거스르고 도를 외면한 공사다. 굳이 그 발상의 저번에 ‘숨겨진’ 목적이 있을 가능성을 상상하기에 앞서, 그 하류 수역의 동족과 주민을 안중에 두었다면 그만한 규모의 댐을 구상할 수 있었을 것인지 되묻고 싶어진다(중략)북한강 골짜기로 9억t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릴 경우 서울 전역과 강원도 1시 3개 군, 경기도 1시 7개 군이 84년 9월 대홍수 때의 10배에 해당하는 수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계산이고 보면 2백억t의 물이 담수되어 있는 상태에서 큰 홍수라도 날 경우 수위 조절을 위한 평상의 방류만으로도 하류 수역의 피해는 가공할만한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언론은 금강산댐의 ‘공포스런’ 결과를 예측하는 내용들을 쏟아냈다. 국방장관 이기백은 “2백억t의 물이 일시에 방류된다면 등고선 50m까지 물에 잠기는 등 중부 일원이 황폐화 도니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공포 부추기기 경쟁’에 나섰다. 지역별로 금강산댐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들이 계속됐고, 서울에서는 10만여 명이 모인 시민궐기대회가 열렸다.
그 대안이 홍수조절을 위한 ‘평화의 댐’이었다. 이번에는 각 언론사가 댐을 건설하기 위한 모금운동에 나섰다. 그렇게 착공된 ‘평화의 댐’은 1988년 5월 1단계 공사를 마쳤다. 그러난 1993년 6월 감사원의 감사 결과 ‘평화의 댐’은 조작된 정보에 따른 것임이 드러났다. 전두환 정권의 ‘안보’를 위한 범죄적 행위와 언론의 나팔수 역할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