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을 회복하자>(1980.5.25.)

광주 민중항쟁은 초기인 1980년 5월 18일과 19일 유혈이 낭자한 계엄군의 잔혹한 진압 과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신군부의 강경진압 결정에 따른 필연적 결과다. 공수부대 만행이 광주 시민들을 분노하게 했고 결국 광주 시민군은 5월 21일 계엄군을 몰아냈다. 계엄사는 이를 '북괴의 조종에 의한 폭동'이라고 국민을 현혹하는가 하면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배후조종자로 날조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5월25일 7면에 기자 김대중의 광주 르포를 내보냈다. 이 르포는 광주의 상황을 '무정부 상태'로, 광주 시민을 '난동자'로 묘사했다.

조선일보 <무정부 상태 광주>(1980.5.25)
...그 고개 내리막길에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고 그 동쪽 너머에 '무정부 상태의 광주'가 있다. 쓰러진 전주·각목·벽돌 등으로 쳐진 바리케이드 뒤에는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2면 사설이다.

조선일보 사설 <도덕성을 회복하자>(1980.5.25.)
사회혼란의 틈바구니에서 또는 격앙된 군중 속에서 간첩이나 오열이 선동하고 파괴와 방화 살상의 선봉적 역할을 하리라는 것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그런 증거가 포착되기도 했으며, 서울에서는 남파간첩이 체포되기도 했다. (중략) 피 흘림을 보고 불길이 솟고 군중의 격앙된 심리상태에서 이성을 잃게 되면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는 분별력을 가질 수 없는 법이다. 57년 전 일본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의 역사가 반교사적으로 우리에게 쓰라린 교훈을 주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광주시민들을 '분별력을 상실한 군중'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광주시민들을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 폭도들과 빗대기도 했다. 그러면서 광주의 항쟁시민들을 향해 "도덕성을 회복하라"고 훈계했다.


5월 27일, 계엄군은 최후의 항전이 벌어진 전남도청을 점령함으로써 사태를 완전히 장악했다. 조선일보는 28일 12면에 사설 <악몽을 씻고 일어서자>를 실었다.

조선일보 사설 <악몽을 씻고 일어서자>(1980.5.28.)
...지금 오직 명백한 것은 광주시민 여러분은 이제 아무런 위협도, 공포도, 불안도 느끼지 않아도 될, 여러분의 생명과 재산을 포함한 모든 안전이 확고하게 보장되는 조건과 환경의 보호를 받게 됐고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략) 때문에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 계엄군은 일반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극소화한 희생만으로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조선일보는 28일에도 저항 시민을 '폭도'로 기술했다. 사설을 통해 "광주 시민 여러분은 이제 아무런 위협도, 공포도, 불안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가 하면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며 군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고 있다. "광주시민에게 거족적 동포애를 모아 보내도록 하자"는 입발림이 분노스러울 정도다.


광주항쟁은 유신독제체제 하에서 박정희의 친위세력으로 자랐던 신군부가 국민의 민주화 열기를 잠재우고 여러 단계의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탈취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시민들의 항거였다. 이 항쟁은 10일 만인 5월 27일 계엄군에 의해 진압됐지만 향후 한국의 민주회복을 이룩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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