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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교원노동조합연합회’를 제대로 된 설명없이 축소보도

지역에 따라 가입자 수에 큰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전국 교원의 22%가 가입한 교원노조는 한국의 교육은 물론이고 정치, 사회, 문화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1960년 4월 말부터 시작된 교원노조 운동을 외면하던 동아일보는 7월 18일자 조간 3면에<해산명령에 항거 / 교조 전국대의원대회서 결의>라는 기사를 2단으로 짤막하게 실었다.

동아일보<해산명령에 항거>(1960.7.18 )
‘대한교원노동조합연합회’의 제1차 전국대회가 17일 상오 10시부터 186명의 대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시내 의사회관에서 개최되었다. “교원노조 해체의 불법을 규탄한다”“단결은 우리의 우리의 힘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날 대회장에는 정부에서 교원노조를 불법이라고 규정한데 대한 부당성이 지적되었고 ‘결의문’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이 기사에는 ‘대한교원노동조합연합회’가 언제 창립되어 어떻게 활동하면서 전국 조직을 갖추고, 186명이나 되는 대의원을 모아 제 1차 전국대회를 열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동아일보만 보는 사람들은 교원노조가 갑자기 땅 밑에서 솟아오른 단체로 여겨졌을 것이다.


허정 과도정부가 교원노조 운동에 대처한 경위는 다음과 같다. 4월 혁명 이후 교원노조 결성 작업이 진행되자 허정 과도정부 안에서는 그 합법성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났다. 1960년 5월 9일 문교부차관 이항녕은 교원노조 활동을 막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5월 19일 문교부장관 이병도는 교원노조를 허가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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