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0월 28일 오후 건국대 민주광장에 전국 29개대 학생 1천5백여 명이 모여 ‘전국 반외세·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발족식’을 열었다. 그들이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1천5백여 명의 경찰이 최루탄을 난사하여 밀려들었다. 학생들은 경찰에 쫓겨 본관 등 건물들로 피신해 농성에 들어갔다.
학교 측은 학생들이 “안전한 귀가를 보장하면 자진 해산하겠다”는 입장이라며 경찰의 철수를 요구했으나 경찰은 그것을 묵살했다. 검찰은 10월 29일 그 사건을 서울지검에서 직접 수사할 방침이여 농성학생 전원을 연행,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그날 사태를 사회면 머리기사로 보도하는 등 검·경 중심으로 관련 기사와 속보를 계속하면서 학생들을 ‘북괴의 동조세력’으로 몰아간 유인물 분석 내용을 ‘유령’기자의 기사로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경찰의 학생 연행 작전을 사회면 머리기사로 보도하고 11월 1일자에는 <폭력 친공은 안된다>라는 사설을 통해 학생들의 좌경화와 경찰의 과잉 진압을 동시에 비판했다.

어떤 경우에도 이 나라의 앞날을 이끌어갈 젊은이들인 학생과 경찰이 정면으로 맞붙어 서로 증오의 대상으로 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일부 학생들의 친공좌경 성향이다. 북한의 생경한 선전 문국를 그대로 옮긴 구호나 대자보가 나붙고 6·25를 ‘민족해방전쟁’으로 보고 ‘반공이데올로기 분쇄투쟁’을 선언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