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5월 5일자 3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시인 김지하의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라는 특별기고문이었다. <환상을 갖고 누굴 선동하려 하나 죽음을 제멋대로 이용할 수 있나 슬기롭고 창조적 저항 선택해야> 등의 부제를 단 이 칼럼부터 <분신 자살, 그릇된 선택>이란 사설, 정권퇴진운동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신민당을 칭찬하는 <신민당의 현명한 판단>이란 사설, <“분신은 침체 운동권위기의식 반영”: 극단 행위 분석>이란 기사까지, 조선은 총력전을 벌이는 듯 했다.

젋은 벗들! 나는 너스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잘라 말하겠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 당신들은 잘못 들어서고 있다. 그것도 크게!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렸다. 젊은 당신들의 슬기로운 결단이 있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
전환기는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 지배하는 것이 특징이다. 실수하기 안성맞춤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허나 지금 당신들은 조심성이 있고 없고 차원을 훨씬 넘어섰다. 당연한 얘기지만 고전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나 주사파의 스테레오타입마저 이미 이탈했다<자살 전념 부채질>
젋은 벗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소름끼치는 의사굿을 당장 걷어 치워라. 영육이 합일된 당신들 자신의 신명, 곧 생명을 공경하며 그 생명의 자연스러운 요구에 따라 끈질기고 슬기로운 창조적인 저항행동을 선택하라<운동은 이제 끝장>
이 칼럼은 재야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 글은 생명에 대한 존중심에 나온 위대한 시인의 고언으로 읽히지 않았다. 어쩔 도리가 없는 절망의 벽 앞에서 제 몸이라도 던져서 항거하고자 했던 젊은이들의 숭고한 열정과, 젊은이들의 죽음 앞에서 통곡을 삼키며 불의에 맞서고 있는 모든 이들에 대한 매몰찬 모욕으로 받아들여졌다. 무엇보다 그런 글이 조선일보에 실렸다는 점에서 재야는 분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