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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식 사회 정화 운동'을 중계방송한 동아일보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군사 정권은 ‘헌정 파괴’또는 ‘군사 반란’에 대한 국내외적 비판을 의식했는지, 아니면 장면 정권보다 사회를 정화할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과시하려 했는지, 쿠데타 당일인 5월 16일부터 ‘깡패 소탕’에 나섰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신문들은 쿠데타세력이 ‘깡패들’을 강제로 ‘행진’시키는 데 관해서 ‘인권 유린’이라는 비판을 하기는커녕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습니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가슴에는 크게 이름을 써 붙인 사진을 곁들여 기사를 내보냈다. 동아일보 5월 23일자 조간 3면 기사는 아래와 같다.

동아일보<깡패 두목들 속죄 행진>(1961.5.23)
사회악 일소를 위해 21일 150여 명의 ‘깡패’두목 급들을 검거, 시가행진을 시켜 그들의 속죄를 촉구하는 한편 불안에 떨던 시민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하였다. 이날 하오 3시경 이 깡패 두목들은 공정부대 장병들의 감시 아래 “깡패 생활을 청산하고 선량한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선두로 남대문로 등 시내의 주요 번화가를 ‘속죄 행진’ 하였다(생략)

군사 정권의 ‘사회 정화 운동’ 가운데 일부는 대중의 호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쿠데타로 권력을 잡음으로써 그 어떤 것보다 심한 불법행위를 자행한 군부가 자신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강조하고 ‘구악 청산’의 의지를 보이려고 인권을 탄압한 것은 비판받아야 마땅한 일이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건이 이미 수감되어 있던 ‘정치깡패들’을 거리로 끌어내서 위에 인용한 것 같은 피켓을 들고 ‘행진’을 시킨 것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받아야 할 피고인들일 뿐이었다.

그리고 댄스폴에서 춤을 추던 남녀들을 체포한 것도 지나친 행위였다. 그들이 계엄령을 어기고 ‘옥내’에서 단순히 춤을 추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체포한 것은 명백한 인권 유린이자 사생활 침해였다. 동아일보는 이런 사실들에 대해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은 채 군사정권의 ‘사회 정화 운동’을 중계방송 하듯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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