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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야당'을 칭송하는 동아일보

1981년 들어 전두환의 ‘제5공화국 창건’은 민주정의당(민정당)의 창당과 대통령후보 지명으로 시작됐다. 민정당은 1월 15일 창당 및 대통령후보로 전출했다. 동아일보는 그 기사를 1월 15일자 1면 머리에 올리고 3면에는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 요지 등 관련 기사를 실었다. 전두환의 5공 정권에 대해 상찬을 아끼지 않았다.


개혁주도세력임을 자임하는 ‘새 정당’이 출범의 가치를 높이 들었다. 제5공화국 헌정 아래서의 첫 정당이다. 구정치 질서가 종언을 고했던 5·17이후 8개월, 지난해 11월28일의 창당선언 이후 불과 48일간의 짧은 회임기간이었지만 민주정의당의 창당대회 안팎 규모는 정당 창당사상 초유였다.


동아일보의 ‘전비어천가’는 1월 16일자 3면 통단사설로 이어졌다.

동아일보<민주정의당 창당>(1981.1.16)
우리의 제5공화국 헌정이 요구하는 것이 이제 민정당이 현직 대통령을 다음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는 마지막 정당이어야 한다는 것이라면 민정당의 앞날의 과제는 정말 만만한 것이 아니다. ‘새 정치’를 앞세워 ‘역사에 신화를 남기는 정당’이 될 것을 다짐하면서 창당된 민정당의 앞날에 영광이 있기를 바라며 무엇보다 정치근대화를 솔선수범해주기 바란다.

5공의 출발은 짜놓은 각본에 따른 진행에 불과했다. 전두환의 민정당이 1월 15일 창당된 데 이어 이틀 뒤에는 총재 유치송의 민주한국당(민한당), 그리고 그 일주일 뒤인 1월 23일에는 총재 김종철 한국국민당(공화당 이념계승)이 창당됐다. 민한당과 국민당은 ‘관제야당’으로 불렸다. 신군부 세력은 집권정당을 위해 다당제의 모양을 갖추려고 들러리 야당들을 만들게 한 것이다.

동아일보는 민정당 창당 이틀 만인 1월 17일 창당한 민한당에 대해서도 전두환이 강조한 ‘정치 근대화’를 촉구했다. 1월 19일자 3면 통단사설<‘민주한국당’창당 / ‘정치의 복권’에 솔선수범 있기를>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동아일보<민주정의당 창당>(1981.1.19)
올바른 야당의 길을 닦아 그 길의 연장 위에 집권의 꿈을 키우는 1차적 책임은 야당 스스로에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의회주의와 정당의 기능 회복을 통한 ‘정치의 복권’과 일대 ‘민족화합운동’을 강조한 유치송 총재 겸 대통령후보의 연설에 우리는 지지를 아끼지 않으며 민한당 스스로 솔선수범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려운 속에 새로 첫 발을 내디딘 ‘민주한국당’의 앞날에 영광이 함께 하기를 빈다.

5공 헌법은 유신헌법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간선제를 택하고 있었다. 게다가 기존 정당을 해산하고 국가가 정당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할 수 있게 함으로써 민한당과 국민당의 창당을 돕고, ‘관제야당’으로 가능하게 한 것이다. 신군부는 정치관계법을 일방적으로 재정비해 정당 다원주의 흉내를 내면서 ‘전두환 독재’를 합법화한 것이다. 이미 의도했던 대로 법과 제도의 정비를 완료하자 신군부는 새 헌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하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언론의 나팔수 역할은 그것을 실감나게 했따. 전두환은 요식행위에 불과했지만 대내적으로 선거를 통해 정통성을 확보하고, 대외적으로는 합법적 정권으로 인정받는 절차를 밟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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