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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를 지지한 동아일보

5월 16일 오전 동아일보는 ‘호외’를 통해 <오늘 미명 군부서 반공혁명>이라는 제목으로 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한 반면, 조선일보는 <오늘 새벽 군부 쿠데타>라고 표현했다. 그날 오전 9시 ‘군사혁명위원회’는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뒤 ‘포고...

날치기 개헌안 통과를 양비론으로 보도

동아일보는 9월 15일자 2면에 <가슴 아픈 정치풍토>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올렸다. 우리 역사는 또 하나의 슬픈 페이지를 기록했다. 14일 새벽 국회는 이윽고 이번 개헌안도 변칙적으로 처리하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본란은...

'혁명정부'로 칭송하는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5월 23일자 석간 1면 사설<내핍·근로의 기풍을 활발히 전개하자>을 통해 ‘혁명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정책을 적극 지지했다. 장도영 내각수반은 22일 5개 항목에 걸친 범국민운동 대강을 발표한 바 그중 제2 및 제3항에서...

'군대식 사회 정화 운동'을 중계방송한 동아일보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군사 정권은 ‘헌정 파괴’또는 ‘군사 반란’에 대한 국내외적 비판을 의식했는지, 아니면 장면 정권보다 사회를 정화할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과시하려 했는지, 쿠데타 당일인 5월 16일부터 ‘깡패 소탕’에 나섰다. 동아일보를...

쿠데타세력의 '언론계정화'를 적극 찬성

쿠데타 엿새 뒤인 5월 23일 국가재건최고회의는 ‘포고 제11호’를 공포하고 제작에 필요한 인쇄시설을 완비하지 못한 신문, 송수신 시설을 구비하지 못한 통신의 발행을 정지시켰다. 그리고 등록 사항을 위반한 정기 및 부정기 간행물은 등록을 취소하며...

동아일보의 '국민투표는 만능이 아니다'

동아일보는 7월 28일자 석간 1면에 <국민투표는 만능이 아니다>라는 사설을 실었다가 혹독한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므로 국민은 언제든지 그리고 마음대로 국민투표의 방법으로 헌법을 ‘개정’할 수가 있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민정 이양 불이행을 합리화하는 사설

동아일보는 12월 28일자 2면 사설<박 의장의 기자회견담을 읽고>을 통해 박정희가 민정 이양 약속을 ‘번의’한 데 대해 아래와 같이 평가했다. (생략)공약 위배냐, 아니냐 하는 것은 결말 없는 추상적 논쟁이라고 우리는 본다. 최고위원들이 국민의...

민주공화당에 극진한 덕담을 보내는 동아일보

1963년 1월 18일 민주공화당(이하 공화당)‘발기 선언대회’가 열렸다. 김종필을 비롯한 발기위원 78명은 “자유민주주의의 새로운 기치를 들고 민족중흥의 의기를 품고 오직 구국을 위한 선구적 정신으로 일어섰다”고 선언했다. 발기인들은 공화당...

박정희를 칭송하며 지지하는 동아일보

1963년 2월 16일 국방부에서 각 군 수뇌회의가 열렸다. 회의 참석자들은 박정희 민정 참여에 반대한다고 결의했다. 한국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케네디 행정부도 같은 견해를 박정희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박정희는 2월 18일 기자회견을...

박정희 재심을 '충심'으로 축하하는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5월 5일자 2면에 <박대통령의 재선에 붙여>라는 사설을 실었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재선을 충심으로 축하한다. 우리는 또한 앞으로 4년 간, 이른바 민족중흥의 귀중한 기간으로 비약시키도록, 박 대통령의 선정을 절실히 당부한다. 이...

3선 개헌을 홍보하는 동아일보

1월 10일 박정희는 연두 기자회견에서 개헌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동아일보는 그 날짜 1면 머리에 그 내용을 크게 보도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주국방 태세의 강화와 지속적인 경제의 고도성장을 금년도의 가장 큰 시정목표로 삼고 있다고...

계속해서 박정희의 '치적' 높이 평가하는 동아일보

공화당이 8월 7일 국회에 개헌안을 제출하자 동아일보는 8월 8일자 2면에 다시 ‘통단사설’을 올렸다. <헌법 개정과 우리의 견해>라는 사설은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이룬 ‘치적’을 높이 평가하면서 ‘계속 집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개헌...

박정희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동아일보

문교부의 ‘시행요강’에 따르면 사회 진출을 준비해야 하는 대학 4학년생들도 170시간이 넘는 교련을 받아야 했다. 동아일보는 1971년 1월 29일자 3면 사설<학구에 지장 없는 교련을>에서 교련‘시행요강’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대학생에게...

'국가비상사태 선언'을 합리화

동아일보는 12월 7일자 3면 사설<국가안보와 자유민주주의>에서 박정희의 초헌법적인 ‘국가비상사태 선언’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지적하지 못하고 그 선언을 합리화하는 논조를 펼쳤다. 오늘의 국내외 정세 판단에 대해서는 이견도 있지만...

'유신대통령'박정희에게 '축사'보내는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유신’이라는 이름으로 화장을 한 헌정쿠데타를 지지하는 짤막한 사설<비상계엄 선포의 의의>을 10월 18일자 3면에 올렸다. 평화통일을 위한 새로운 국가체제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될는지 궁금하지만 비상국문회의는 12월...

검찰의 발표문을 그대로 보도한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10월 유신’이후 최초의 ‘유신체제 반대’ 운동인 남산 부활절연합예배 사건에 관해 독자적인 취재를 하지 않고 검찰의 발표문을 그대로 보도했다. 1973년 7월 6일자 7면에 3단으로 실린 기사<내란음모 기도 15명 검거 / 지검 발표...

일제를 노골적으로 찬양하는 동아일보

1920년 9월 25일자로 무기정간 처분을 받은 동아일보는 3개월반이 지난 1921년 1월 10일 정간 해제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여러가지 사정 때문에 속간호는 2월 21일자로 내게 되었다. 1면에 실린 <속간사>는 민족지를 자처하던 동아일보가...

동아일보의 '민족성' 헐뜯기

1920년 8월 9일자부터 23일자까지 동아일보는 1면 머리에 7회에 걸쳐 사설 <조선인의 단처를 논하여 반성을 촉하노라>를 연재했다. 이 사설을 통해 ‘민족지’라고 자청하던 동아일보의 ‘민족관’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이와 같은 결과로 조선은...

중앙정보부 발표문을 그대로 받아쓰고 지지하는 동아일보

1974년 4월 25일 중앙정보부장 신직수는 민청학련 사건에 관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동아일보는 그 날짜 1면 머리에 발표문을 그대로 받아썼다. 폭력데모로 노농정권 수립 기도 / ‘민청학련’ 사건 수사 상황 발표 / 4월 3일 봉기 청와대...

'인민혁명당 사건' 왜곡보도한 동아일보

4월 8일, 박정희는 고려대를 대상으로 긴급조치 7호를 발동했다. 같은날 대법원은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 가운데 서도원, 도예종, 하재완, 송상진, 이수병, 우홍원, 김용원, 그리고 민청학련 관련자 여정남에게 원심대로 사형을 확정했다.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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