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방응모 사장의 친일 행적
1932년 조선일보를 인수해 사장이 된 방응모, 현 방 씨 일가의 모태가 된 그의 친일 행적은 공식적 문건으로 확인된다. <국방헌납 병기수령에 관한 건>이라는 일본 육군성 정무차관실 문서(1933년 4월 15일자) 등 일제에 기관총과 같은 무기를...
1932년 조선일보를 인수해 사장이 된 방응모, 현 방 씨 일가의 모태가 된 그의 친일 행적은 공식적 문건으로 확인된다. <국방헌납 병기수령에 관한 건>이라는 일본 육군성 정무차관실 문서(1933년 4월 15일자) 등 일제에 기관총과 같은 무기를...
방응모가 경영권을 인수한 직후부터 조선일보는 노골적으로 일본 왕실을 찬양하는 기사를 잇따라 게재하기 시작했다. 이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일본은 다른 나라와 달라서 건국 이래로 황실은 곳 일본 전민족의 대종가라는 신념이 잇고, 더욱 명치천황폐하의...
조선일보는 일제가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 대륙을 침략하자 일본군을 '아군' 또는 '황군'으로 표현하고 침략 전쟁에 조선 민중이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1937년 8월 2일 사설, <총후의 임무-조선군사후원연맹이...
조선일보는 회사와 사원들이 직접 일본 제국주의가 자행한 전쟁이 헌금, 위문금을 헌사했으며 이를 자랑스레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1937년 8월 12일 사고(社告)를 통하여 조선일보사와 사원들이 솔선해서 헌금한 사실을 밝히면서 “북지사변(중일전쟁)...
불법적인 중일전쟁 개전과 난징 대학살 등 일제의 만행을 찬양하던 조선일보는 1938년에도 계속 일제 침략전쟁에 부역, 조선 민중을 전장으로 내몰았다. 조선일보는 1938년 1월 1일 신년호 기이(其二)에서 <전시체제 하의 정치․군사․행정......
일제가 아예 조선 청년들을 침략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만든 제도와 훈련소에도 조선일보는 찬사를 보냈다. 조선일보는 1938년 6월 15일 육군지원병훈련소 개소를 맞아 사설과 1면 머릿기사로, 일제가 1938년 4월경 조선 청년을 일제 침략 전쟁의...
조선일보는 친일 보도 이외에도 광고란을 통해 노골적으로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하고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등 일제강점기 민족정신과 신념을 배반하고 일제와 그 시책에 적극 협력했다. 이후에도 ‘기(祈)...
조선일보는 부록인 <소년조선일보>, 즉 어린이들을 독자로 둔 보도에서도 일본 제국주의이 대한 충성을 독려, 강요하고 일제의 시책을 적극 찬양, 홍보했다. 소년조선일보 <품팔아 모은 돈을 황군위문금으로 제생원아동들의 성심 듣는 사람마다...
조선일보의 친일 광고는 중일전쟁 발발 후 더욱 노골화됐다. 조선일보는 중일전쟁 발발 2개월 후인 1937년 9월 7일자에 어린이들이 일장기와 총 및 일본도를 들고 전쟁놀이를 하는 그림과 함께 ‘총후의 책무 국가를 위하여’라는 문구의 광고를,...
일제가 중일전쟁을 발발한 1937년부터 조선일보의 일본 왕실에 대한 찬양이 극심해졌는데 그 일면에 가장 잘 드러난 예가 매년 1월 1일 조선일보가 1면 상단에 게재한 일왕 부부 사진 및 찬양 기사, 사설이다. 사실상 일본 왕실에 충성을 맹세하는...
일본 왕실에 충성하는 조선일보의 행보는 일왕 생일, 일본 명치왕의 생일 등 일본 왕가의 생일에도 유별났다. 조선일보는 왕실의 생일마다 축하 기사와 사설을 내며 찬양했다. 조선일보는 1937년 4월 29일 조간 1면에서...
조선일보는 일제의 침략 전쟁 수행을 뒷받침하기 위해 조선 민중의 허리띠도 졸라야 한다고 강변했다. 일제의 불법적 침략전쟁에 조선인들의 내핍을 요구한 것이다. “때가 전시인지라 국민(조선인)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아가야 하겠고 부과하는...
1937년 일제의 중국 침략 이후 줄곧 조선의 협력을 독려하고 일제 군대, 일 왕실을 찬양하던 조선일보는 일제의 육군기념일, 침략 기념일을 기리는 사설과 기사도 남발했다. 조선일보는 1939년 3월 10일 조간 1면에 게재된 사설 <육군기념일에...
조선일보는 일 왕실이 준 하사품을 받았다고 자랑스레 1면에 보도했다.
방응모 사장이 인수한 이후 노골적인 친일 행보로 전성기를 구가한 조선일보는 사보에서 자사의 반민족 행위를 자화자찬했다. 조선일보는 1939년 4월 1일자 조선일보사보 제9호 3면에 게재된 <본사의 빗나는 신년호... 각지 신년호 비판회 개최>란...
조선일보는 기사와 광고 뿐 아니라 직접 친일조직에 가입하고 친일 동원 행사를 주최하며 적극적으로 친일 행위에 가담하기도 했다. 1938년 7월 7일, 일제의 침략 전쟁 수행을 위해 일본제국주의 정책 협력을 핵심 업무로, 내선일체를 내세워...
일제의 침략 전쟁이 극에 달할수록 조선일보의 친일 행보도 기세를 더했다. 소년조선일보를 통해 조선 어린이들의 침략 전쟁 찬양과 충성을 독려하는 보도도 계속됐다. 조선일보는 1939년 5월 28일 소년조선일보 2면에 게재된 기사 <황국의 흥페는...
조선일보는 내선일체의 기치를 들고 일어의 상용화를 강요한 조선총독부 방침에 호응해 소년조선일보 고정코너인 '학습페이지'에 일본어 학습란을 게재, 조선의 어린이들에게 일본어를 국어로 공부하도록 조장했다.
조선일보는 직접 일본 제국주의 정책에 협력하는 친일 동원 행사를 여러 차례 주최하고 이를 지면에 광고, 보도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일본제국주의 정책협력을 통해 조선민중을 일본의 침략전쟁에 내몰기 위한 각종 친일동원 행사도 여러 번 주최했다....
일제가 침략전쟁을 위한 총동원 체제로 접어들면서 단행한 언론사 통폐합에 합의해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 통합을 맞이한 1940년에도, 조선일보는 일제와 일왕을 향한 충성을 이어갔다. 이 시기 아예 조선일보는 제호 위에 일장기를 달아 신문을 냈다....